바닷가서 만난 시인과 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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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0여명이 1주일간 야영>

<시 낭송·습작에 열띤 토론>
한여름의 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구룡포해수욕장에 시인학교가 개설된다는 소식에 접했다. 올 여름은 너무 비가 자주 많이와서 피서에 별 의의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현지에 닿아보니 날씨가 말짱히 개 있었다. 서울에서 비를 피해온 셈이었다.
해변시인학교는 문교부의 인가도 교사도 필요치 않은 그야말로 모랫벌 위에 세워진 학교였다. 옷과 마음을 훌훌 벗어 놓고 시에 대한 생각을 기탄없이 교환할수있는 자유의 터전이었다.
시인과 독자가 동해남단의 한 모퉁이에서 「랑데부」를 시도했다는 사실보다 서울을 비롯한 부산·대구·대전·경주·강릉·포항 등지에서 30여명의 시인과 80여명의 시독자가 한 주일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어 보았다는데 큰 의의를 찾아볼 수있다.
시인학교라는 명칭은 고사하고라도 시창작교실의 성격을 띤 행사가 일찌기 이땅에 있었던 것같지 않다. 시인이 독자를 찾아나서고 독자가 자연스레 시인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바로 이 시인학교가 마련해 준 셈이었다. 시인이 독자를 찾아 나섰다고 해서 시인이 독자와 안이하게 타협하거나 시의 대중화를 기도하는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인과 독자와의 「갭」을 다소라도 좁힘으로써 독자가 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시를 어떻게 읽고 쓸 것인가, 다시 말하면 시를 읽는 마음과 시를 쓰는 마음을 독자에게 심어보려는데 근본취지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개교첫날 나는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해 말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확실히 무상의 행위에 속한다. 요즈음 갈이 물질만능시대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위를 왜 하고 있는가. 시를 씀으로 해서 배를 곯고 추위에 떨어야 하는 괴로움을, 그래도 「나」를 찾는 즐거움때문에 시를 쓴다. 즉 시를 저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를 버릴 수 없다는 얘기와 통한다. 「나」는 사회적 현실의 한 여건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의 한 기점이 되려고하는데서 「나」에 대한 자각이 있게되며 그 때문에 시를 쓰지 않고서는 못배긴다』 고 시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이애 대해 독자로부터 많은 질의가 쏟아져 나왔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대화는 밤이 이슥토록 계속되었다. 시인과 현실과의 관계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리를 같이했던 시인들이 시를 낭독하고 작시동기를 밝히자 독자들도 습작시를 낭독하고 시인들의 의견과 첨삭을 요청해 오기도했다. 시인과 독자가 이처럼 호흡을 같이해보기도 시문학사장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싶다.
2일째는 황금찬씨가 「시작의 기법」을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고 3일째는 이유경씨가 「시정신이란 무엇인가」를, 그리고 4일째는 이건청씨가 「시인의 자세」에 대해 언급했다. 5일째 마지막날은 박동규씨가 「새로운 문학운동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금년도 시인학교를 마무리짓는 인사의 말을 했다. 시종 진지한 질의와 토의, 그리고 시낭송이 계속 되었다.
이밖에도 한글시 백일장과 시인과 독자와의 운동경기도 올 여름의 인상깊은 추억으로 남게될것이다.
독자들은 해마다 이런 모임이 있기를 열렬히 소망했는데 주최측도 교통편이 좀더 나은 곳을 택한다면 시인학교가 번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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