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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내공 OSR 앙상블 … 김연아 피겨곡이 백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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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 빅토리아홀에서 아시아 순회공연에 앞서 같은 레퍼토리로 콘서트를 연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당신의 삶에 리듬을 부여하는 오케스트라’. 스위스 제2의 도시 제네바 도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입간판 문구다. 해외에서 스위스의 홍보 대사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 이하 OSR)의 2014~15년 시즌 광고다. 이탈리아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가 그린 ‘류트 연주자’(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머리를 곱게 땋은 여성이 류트 대신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옆으로 눕힌 로고의 R자가 바이올린의 곡선과 연결된다.

 OSR(예술감독 겸 음악감독 네메 예르비)은 문자 그대로 프랑스어권 스위스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다. 제네바 시민의 삶에 활력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은 공연 직전 무대에 들어서는 단원들의 밝은 표정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지난달 29일 제네바 빅토리아 홀에서 열린 OSR의 공연은 2013~14년 시즌의 피날레 공연이자 아시아 순회공연의 출정식이었다. 오는 9월이면 수석 객원지휘자 취임 3년째를 맞는 야마다 가즈키(35)가 지휘봉을 잡았다.

 창단 초기부터 현대음악의 해석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OSR이 첫 곡으로 들려준 아르튀르 오네게르의 ‘퍼시픽 231’에서 터져나오는 근육질의 사운드도 좋았지만 이날 공연의 백미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시 ‘셰헤라자데’였다. 1악장은 김연아 선수가 ‘2009 세계 피겨 선수권 대회’ 프리 스케이팅에서 우승할 때 사용한 음악으로 유명하다. 지휘자들 사이에서는 새 교향악단에 부임했을 때 악장을 비롯한 각 파트 수석 주자들의 독주 기량을 점검하는 시금석으로 통한다. 하지만 OSR 수석 주자들은 이곡에서 솔로 기질을 마음껏 뽐냈고 나머지 단원들도 탄탄한 앙상블로 뒷받침해주었다.

 ‘셰헤라자데’는 발레음악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만큼 춤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 많다. 적재적소에 알맞는 동작과 표정으로 오케스트라의 잠재적 능력과 장점을 십분 발휘하도록 해주었다. OSR 특유의 사운드는 프랑스와 러시아 레퍼토리에 유난히 강했던 초대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50년간 조련한 결과 켜켜이 배어있는 농밀한 뉘앙스와 에스프리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창단 때부터 줄곧 상주 무대로 사용해온 빅토리아 홀의 뛰어난 음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OSR은 오는 15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3년 만의 내한공연을 연다. ‘퍼시픽 231’ ‘셰헤라자데’ 외에 클라라 주미 강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제네바=글·사진 이장직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특임연구원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스위스에는 독일어권인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 이탈리아어권인 ‘스비체라 이탈리아나 오케스트라’, 그리고 프랑스어권인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유명하다. 1918년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창단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알프스의 백설을 닮은 청정무구한 소리로 이름났다. 앙세르메가 50년 가까이 음악 감독으로 재임하며 조련해 기본을 닦은 뒤 최근 들어 마렉 야노프스키가 브루크너의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는 등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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