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이 「문법의 시녀」가 될 수는 없다.|다시 독일어교과서 오류에 붙여|김성대<단국대교수· 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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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중앙일보 7윌 18일자(일부지방 19일자)에 실린 박찬기교수님의 견해를 읽었다. 이에 대하여 다시 몇자 적는다.
Bist du Chinese?는 물론 그 자체로는 틀림이 없다.
문제는 상대편이 한국 사람인 것도 모르고 중국 사람이냐고 묻고 있는 낯설고 서먹서먹한 처지에서 du를 사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du를 사용하는 사이라면 일반적으로 『매우 절친한 관계여서 국적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7월 14일자·일부지방 15일)이다.
그런데 du가 쓰이는 관계의 첫째 범주가 가족·친구등의 「매우 절친한 사이」라는 것 이 『낡은 문법서 에서나 찾아 볼 수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저 Duden Ⅳ권의 인칭대명사 du와 ihr의 항목 및 Duden Ⅸ권의 Anrede항목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고등학교에서나 대학교에서 서로 du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위에서 말한 인간관계에 그 근본적인 바탕을 두고 있다.
대뜸 처음 만난 사람에게 du로 말을 걸면서 국적을 확인하려 든다는 특수한 언어 상황이 어떻게 교과서의 I권 제 l과에 실릴 수 있겠는가. 교과서란 그야말로 가장 일반적인 언어 상황에서 투입된 정상적인 언어사용이 실려야 그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가 sein 동사의 변화를 습득시키기 위한 자리』라는 말도 단원 구성에서 앞뒤가 바뀐 말이다. 본문은 학습하기 위하여 문법이 뒤따라 나와야지 문법의 sein동사 변화를 위해 본문이 있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문법이「본문의 시녀」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본문이 「문법의 시녀」가 되어버린다. 그럴 수 있단 말인가?
Knabe가 오늘날의 일상어에서 거의 쓰이지 않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진명판 I권의 바탕이 되는 Aut deutsch, bitte!에서만 보더라도 Jung로 되어 있다.
또 외국어 교육에서의 문화적 의의도 우선 오늘날의 살아있는 언어를 먼저 배우는 과정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Goethe의 『들장미』에 나온다해서 이 낱말이 친근미를 줄 수 있다는 말도 곤란하다.
이 시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이 시를 가르치려면 Knade보다 동사 과거꼴이 더욱 중요한 학습사항이 된다.
이 과정을 거쳐서 이 시를 이해·감상하기에 이르고 또 Knabe에 친근미를 느낄 수 있게 되자, 시간상으로 봐서 I권 6과에서는 전혀 문제가 달라진다.
교과서에서 무엇을 어떤 순서로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지금이라도 있어야하겠다.
그리고 Wer ist das?/Das ist ein Mann.의 경우, 눈앞의 그림에 분명히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알고싶어 할 대답을 어찌 『이 사람은 한 남자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남자를 앞에 놓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라서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란 그때그때의 상황에 어울리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상에서 간략히 밝힌 대로, 새 교과서에 나와있는 잘못에 대한 글쓴이의 주장은 결코 「근거 없는」주장이 아니다.
「도이치」말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새 교과서를 본 뒤 그 옮고 그름을 기탄 없이 밝혀 보려는 것을, 막연하게 「순수한 동기」여부 등을 들고 나오면서 「선동적인 언사」의 「부당한 악평」을 한다고 몰아친다면 지나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글쓴이의 참 뜻은, 당면 문제도 어쩌면 한번쯤은 털어놓고 거론될 필요가 있다고 믿어, 그러한 논의에의 계기를 마련해 보자는 데 있음을 이 자리에서 밝혀 둔다.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지 않았다는 말에도 수긍할 수 없다. 신문의 지면이 「가볍게 농담할 수 있는 장소」라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독자층이 한정된 학회지나 전문지의 자리를 빌 수도 있겠으나, 교과서와 같은 문제는 사회의 공기인 신문의 지면을 비는 것도 이런 문제에 모두 함께 관심을 갖게되는 보다 좋은 계기가 된다고 하겠다.
다만 지면 관계상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은 비록 부분적이나마, 훨씬 더 「자세한 논의」의 형식으로 적당한 지면을 빌어 곧 제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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