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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헌법 무력화' 따라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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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한 강연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는 돌연 나치 독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나치 정권에 의해)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이처럼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게 한 수법을 (일본이) 배우면 어떨까.” 당시만 해도 일본 언론들은 “‘망언 제조기’ 아소가 또 나치 발언으로 사고를 쳤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언이 아닌 다가올 현실이었다.

 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헌법해석 변경을 통해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를 가능하도록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하면서 “이미 아베·아소 등 정권 핵심부에선 나치를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최고의 역사학자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84)는 2일 마이니치(每日)신문 기고에서 “아소는 아베 총리 주변의 식자(識者)들이 당시 논의하고 있었던 사실을 무심결에 누설한 것이었다”며 “(아베는) 히틀러처럼 일본에서도 헌법의 해석 변경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번에 9조(평화헌법)를 유명무실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나치의 집권 당시와 현 일본의 상황은 묘하게 일치한다. 나치의 수괴 아돌프 히틀러는 1933년 총리가 되자 현대적 헌법의 효시로 ‘가장 이상적 헌법’이라 불렸던 바이마르 헌법을 무력화했다.

 헌법 개정에 의한 게 아니었다. 수권법(授權法)을 통해 입법권 등 의회의 권한을 말살했다. 그리고 정부가 사실상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석’을 마음대로 변경했다.

 전후 일본의 번영을 지탱해 온 평화헌법 또한 최근 노벨상 후보로 접수될 정도로 존경 받는 헌법이다. 아베 정권도 개헌을 하는 대신 헌법해석을 바꾸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아베가 이번 각의결정의 후속 조치로 자위대법·무력공격사태법 등 개별법을 뜯어고치면 ‘전쟁과 무력행사 포기’란 평화헌법의 근간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된다.

 연립여당의 힘으로 헌법을 무력화시킨 점도 일치한다. 히틀러는 33년 열린 총선에서 전체의석 608석 중 230석을 얻어 제1당이 됐지만 개헌발의선에는 미치지 못했다. 자민당도 2012년의 중의원, 2013년의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했지만 개헌발의선인 3분의 2는 얻지 못했다. 이에 두 지도자 모두 연정의 힘을 빌려 헌법을 무력화시켰다.

 경제정책으로 인기몰이를 해 국민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다음 자신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수법도 같다. 600만 명의 실업자를 떠안은 나치 정권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추진해 일시적으로 국민을 환호케 했다. 아베도 디플레이션 해소를 위해 무제한으로 돈을 찍어내고 경기부양에 나선 뒤 집단적 자위권을 각의결정했다. 아베가 이끄는 일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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