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맞고 상대방 밀어 치사" 유죄여부로 법원·검찰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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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싸움을 말리다가 도리어 뺨을 맞고 상대방을 밀어붙인 것이「폭행」인가,「정당행위」인가. 생활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 같은 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정당한 행위다」,「폭행이다」며 논쟁을 벌이고 있다. 법원은『자기를 때린 사람을 밀어붙이는 것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당행위가 된다』는 주장이고, 검찰은『경위야 어떻든 밀어서 넘어지게 한 것은 폭행죄에 해당한다』고 맞섰다.
이 논쟁의 초점은 김기석 피고인(30·운전사·서울 상봉동 207)에 대한 폭행치사 사건. 1, 2심에서 김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 반론을 내세우고있다.
이 사건이 비롯된 것은 76년5월8일.
김 피고인은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 공릉동「시멘트·블록」공장에서 동료 종업원 김모씨(25)와 전모씨(28)가 사소한 일로 주먹다짐을 벌이는 것을 보고있었다.
이때 전씨의 친구 이상구씨(당시 26세·공릉동 614)가 놀러왔다가 이를 보고 싸움을 말리기 위해 김씨의 허리를 붙잡아 떼려다 같이 땅바닥에 넘어졌다.
이 순간 김 피고인은 이씨를 도와주기 위해 이씨를 일으켜 세워줬다. 그러나 이씨는 김 피고인이 싸움을 걸어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김 피고인의 뺨을 후려쳤다.
엉겁결에 김 피고인은 화가 나서 붙잡고있던 이씨의 양어깨를 밀어붙였다. 이씨가 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이씨는 의식을 잃고 버둥댔다.
김씨와 전씨는 싸움을 중단하고 이씨를 들쳐업고 집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씨는 다음날 아침9시 숨지고 말았다. 사인은 외상성 뇌출혈.
김 피고인은 곧「폭행치사」혐의로 태릉경찰서에 구속됐고 그 해 5월28일 같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김 피고인은 법정에서 ▲자신이나 피해자 이씨가 싸움의 당사자들이 아니었고 ▲이씨가 쓰러진 것을 보고 단순히 도와주기 위해 일으켜 주었는데도 이씨가 오히려 자기를 때려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밀어붙인 것이며 ▲이씨에게 신체적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피고인이 이씨를『밀어 붙였다』는 것은 신체적 피해를 주려고 한 것이 명백하며 ▲이씨가 숨지기까지 했으므로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한다고 주장, 김 피고인에게 징역3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법 성북지원 형사합의부는 76년9월7일 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은 모두 인정했으나『사건의 경위, 밀어붙인 정도, 피해자의 태도 등으로 미루어 김 피고인이 이씨를 밀어붙인 것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 고 무죄이유를 말했다. 재판부는 김 피고인의 행위는 위법성이 없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이에 불복, 항고했으나 지난달 말 서울고법형사부 역시 같은 이유로 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경위야 어떻든 밀어서 넘어지게 한 것은 폭행죄에 해당되고 ▲이씨가 김 피고인을 가해자로 잘못 알고 때린 것은 정상참작의 일부에 불과하며 ▲이씨가 숨졌는데도 가해자인 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는 것은 법익(법익)의 균형을 깨뜨린 판결이라고 주장,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일부현직법관과 재야법조인사들은『진취적인 판결이다.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앞으로 사소한 폭력사건의 경우 지금보다 무죄판결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정상을 참작한다는 것과 죄가 안 된다는 것은 다르다』며『이 사건의 경우 김 피고인의 행위는 정상을 참작해줄 수 있는데 불과한 것이며 법원이 정당행위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정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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