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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낙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년3월 작고한 청녹파시인 박목월씨의 미발표 시·수필등 다수의 유고가 유족에 의해 최근 공
개됐다. 이들 유고중 수필을 묶은 책이 곧 간행될 예정이다. 이가운데 낙조의 서울 풍경을 서정적
으로 묘사한『서울의 낙일』을 소개한다.<편집자주>
도시의 낙일은 처절하다는 느낌을 요즈음에 와서 가끔 느끼곤 한다. 이유는 그것을 발견한 것
이 최근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청에서 서소문으로 통하는 길에 갑자기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갑자기-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이지만 작금 양년간 늘어나는 고층 건물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
야말로 하루아침에 불쑥 솟은것처럼 느껴 질 때가 허다하다. 그 중에서도 서소문에서 시청으로
통하는 골목이 극심하다.
10여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길을 메울 듯 늘어서서 서울 중심지 중에서도 가장 도시적인 풍경
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낙일은 그 골목으로 해가 떨어진다.
몇해전만 하더라도 무심하게 보아온 낙일이 고층건물의 중허리에서 벌겋게 퇴색한 해가 걸리게
되고, 차가운 유리창에 겨울저녁의 낙조가 반사하게 되자, 이상하게 가슴을 저며내는 슬픔을 자아
내게 했다.
나는 시내로 들어가기만 하면 대체로 시청 앞에서「버스」를 타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버스」를 기다리는 황당한 군중 사이에 섞여 저녁하늘에 홀연히 솟는 어둑한 고층
건물의 차가운 직선 너머로 꽈리처럼 벌건 햇덩이가 지는 것을 바라보곤 하게 된다.
어제는 빛을 잃은 햇덩이가 걸린 중앙일보사「빌딩」에 이른 저녁의 등불이 창마다 켜져 있었
다. 그것은 불이 꺼진 것보다 더욱 공허하고 허전한 느낌을 주는 광경이었다. 수없이 많은 창 하
나하나가 형언할 수 없이 서러운 빛을 띠는 눈동자처럼 이른 저녁의 쇠리쇠리한 불빛을 켜고 있
었다. 그 등뒤로 햇덩이가 지고 있었다.
그 슬픈 배경을 등에 지고 하루의 일을 마친 창백한「샐러리맨」의 떼서리가「버스」를 타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한 장의 신문지 조각보다도 하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그들 떼서리 속
에 끼어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이 처량했다. 이런 것이 도시의 비애일까-. 「버스」안에서도 소년
같은 감상이 가슴을 울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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