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이경숙>|정치도「스포츠」도 모두가 관심쏟아야 선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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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도대체 중도통합론이란게 뭘까.』
『그걸 알 필요가 어디 있어. 언제 원칙 따져 보고 사람 선택했나. 조직과 자금만 있으면 만사
해결인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을 걸. 바람이 제방향을 타면 무서울 거야.』
『그럼, 우리 누가 이기나 내기 할까.』
『누가 이기건 무슨 상관이람. 누가 이겨도 나와는 무관한 일인 걸.』
『하긴 그래.』
신민당 총재 선출을 위한 1차투표 결과를 들은 후에 퇴근「버스」속에서 오간 대화의 내용이
다. 누가 야당당수가 되건 내 생활과는 연관이 없으니까 남의집 굿보듯 무관심한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것이 우리나라 대중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중은 생산의 주체일뿐만 아니라 역사창조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중이 현대정치에 대해 체념과 절망을 가지게 됐을 때 정치적 무관심으로 빠지게 된
다.
그러면 그 체념과 절망은 왜 생기게 되는가?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권력자들이고, 권력자들은 대중과는 다른 세계의 사
람이란 생각에 젖을 때 사람들은 정치에 대하여 체념하거나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안보가 지상과업으로 되어있는 체제하에서 정치에 대한 언급은 은연중「터부」패되고, 정치와
관련된 많은 용어와 분야가 설움을 당하는 입장이 되었다. 「정치적인 것」은「믿을수 없는것」
「시끄러운 것」으로 해석이 되고, 정치학과 졸업생은 아무리 유능해도 각기업체의 신입사원모집
자격에 해당이 되지 않아 인간차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행정은 있어도 정치는 없다」는 시대평
론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비대해 가는 행정권을 쳐다만 보게 되었으며 반비례적으로 축
소해 가는 의회의 권한과 기능이 대조가 될 뿐이었다.
이러한 풍토하에서 불신·부정·부패·부조리 현장이 큼지막한 기사로 지상에 소개되면, 국민
은 일단 분노를 느끼지만 그 뒤처리가 대체로 시원찮게 끝나니까 정치일반에 대한 반감과 혐오감
이 더욱 짙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있었던 신민당 전당대회는 때 이르게 닥쳐온 더위로 느슨해진 신경을 긴장시켜
주는 자극제 역할을 해냈다. 당수후보로 7명이 나선다고 알려졌을 때 솔직히 말해서 일반국민은
각목대회의 추태상을 뇌리에 떠올렸고 망신만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당대회가 임박해 오자 연합세력이 형성되어 사색전으로 압축되면서 대중의 관심은 높아지게
되었고 1차투표가 끝나자 조금씩 흥분을 느끼면서 2차투표결과를 기다렸다. 이철승씨와 김영삼씨
의 경합이「중도통합론」「참여하의 개혁」대「선명야당」「민주회복」의 정강정책중심의 대결및
「조직과 자금」 대 「바람」의 인물중심 대결로 집약해서 표현되었다.
전당대회는「스포츠」대회 치르듯이 개운하고 시원하게 마무리지어졌다. 비록 대회진행이나 총
재선출 과정은 파벌간의 치열한 대립을 보여주었으나 그 속에서 질서가 잡혀지고 설득과 흥정 타
협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하고, 승자는 패자에게 치하를 하는 멋진「스포
츠맨십」을 보게 되었다.
승자와 패자가 악수를 하고, 당의 단결을 다짐하는 모습은 외신보도에서나 볼수 있는 남의 일
로만 알고있던 국민들에게 청량제같은 통쾌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더군다나 인물중심보다는 정강
정책중심으로 투표한 것이 결과로 나타나자 정당정치의 발전과 산 민주주의의 실천을 증명해준
대회였다고 자타가 공인하게 되었다.
본래 정치의 목적은 지저분하고 추악한 무용지악을 연출해 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
고 올바르게 가치 분배를 함으로써 보다 나은 사회건설을 이룩하는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해서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요구와 소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판단하여 그 충족을 위
해 최선을 다해야하고, 대중은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민주주의는 정치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정치의 주체로 간주한다는데 그 요체가 있다. 국민이 적
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하는것도 거기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론과 실제는 부합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밀즈」(C.W.Mills)는 현대 미국의 압도적인 대중의 무관심은 급진적도 아니고, 자유
적도 아니고, 보수적도 아니고, 반동적도 아니고, 비행동적이라고 표현한바 있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나라 대중의 무관심 형태에도 적용된다고 볼수 있다.
대중의 무관심은 불안과 고독을 낳고 불안과 고독에 빠진 대중은 이성과 주체성을 잃고 감정과
정서에 지배되는 행동으로 나가기 쉽다. 대중은「스포츠」나「쇼」에서 맛보는 재미와 흥분을 느
낄 수 있을때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오도하는 지도자가 나타나면 민
주주의가 지향하는 방향과는 역행하는 양상이 나타날 위험성이 언제나 있다.
이러한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치자나 피치자나 정치의 본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되새기
고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경우를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피치자는 치자의 행동에 대해
부단한 관심을 보이고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정치를 피안의 불로 보는 무성의하고 무책
임한 대중의 태도와 행동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권력남용을 초래하고 묵인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신민당 전당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배후에는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지난날 실추된
신뢰를 회복해보겠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는「스포츠」다운 면이 많다. 국민들이 평상시에 운동선수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뒷받침을 성의껏하면 훌륭한 경기를 볼 수 있듯이, 정치가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 및 선택을 소홀
히 하지 않을 때,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대중민주주의의 참뜻이 펼쳐질 것이다.
▲숙명여대·대학원정치학과졸업▲미「캔자스」대를 거쳐「사우드·캐롤라이나」대서 국제정치
학박사학위취득▲주요논문=『세계 체계상에 있어서의 폭력억제』『중앙「리더십」변화』『정치발
전접근법』등 ▲현재 숙명여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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