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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익살 속에 백의민족 재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징과 꽹과리가 울리고 굿거리 장단에 맞춰 문둥이 광대 한 사람이 소고를 갖고 마당을 돌면서 한바탕 춤을 춘다.
부자유스런 몸짓 속에 병을 앓는 문둥이의 비애가 나타나다가 갑자기 환희에 찬 동작으로 변하며 또 음탕한 동작 표현으로 뒤바뀌기도 한다.
덧뵈기장단에 떨리듯 옮겨 딛는 발걸음이 우선 뛰어난 「문둥광대」 가면의 주인공 조용배씨(51)의 동작에 따라 관중석에선 『좋다』소리와 함께 한때의 대학생들이 무릎과 책가방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7호「고성오광대」 제1파장이 진행된 덕수궁 뒤뜰의 풍경이다.
무형문화재 보호협회가 주최한 제 10회 중요 무형문화재 발표공연의 첫날인 28일 하오 2시 유난히 뜨거운 햇볕 속에 개막된 공연은 출연자나 관중의 뜨거운 열기가 더욱 두드러졌다.
「고성오광대」의 출연진은 예능보유자만 해도 조용배·허종폭· 박진학· 허판세· 허현도· 이?수· 최규칠· 이구순 등 8명, 이들의 예능 이수자와 전 수강학생이 11명이다.
햇볕 뜨거운 놀이마당의 새끼줄 바로 앞에 멍석을 일찌감치 차지한 관중은 남녀 대학생들. 놀랍게도 멋진 춤과 익살스런 대사에 맞춰 장단을 맞추고 판소리로 호응하는 사람도 이들 젊은이들이다.
특히 퇴약 볕을 얼굴에 받으며 상기된 얼굴로 흥을 돋우던 한국외대 가면극연구반원 15명과 멀리 광주에서 올라온 전남대 전통극연구반원 5명의 열의가 발군이다.
임석천(전남대 화공계열2년), 조희제(외대 「아랍」어과 2년) 군 등 대학생들은 한결같이 민족의 전통적 민속을 되살리려는 사명감으로 놀이마당에 함께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생 관객에 못지 않은 열의를 보인 관객들은「카메라」를 메고 연희장면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외국인들.
이들의 극성은 놀이마당에 붙여 세운 천막준비실에서 옷 갈아입고 분장하기 바쁜 출연자들을 쫓아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놀이판에 놀란 덕수궁 동물우리 속의 공작새가 유난히 소리지르고 놀이를 찍으려고 몰려든 사진사들 또한 장관을 이뤘다.
놀이판은 비교적 흥겨웠지만 연기자의 소리를 전하는 확성기소리가 잡음 섞여 부조화를 이룬 것이 옥의 티다.
이날 「고성오광」대에 이어선 「북청사자놀음」이 김염석옹(71) 등 예능보유자 7명과 그밖에 이수자 등 l8명이 출연한 가운데 열렸다.
중요무형문화재 가운데 마당놀이에 해당하는 전 종목 16종을 6월4일까지 8일간 매일 2종목씩 한 마당에서 펼쳐 보이는 이번 발표회는 그 규모로나 내용면에서 처음 있는 기획이다.
본래 마당놀이로 전승되어 오던 민속을 가설무대가 아닌 진짜 마당 위에서 재연함으로써 그 원형을 찾자는 데도 뜻이 있겠거니와 인간문화재인 예능 보유자만도 71명, 이수자와 전수생 1백 61명 등 모두 2백32명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이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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