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아파트」의 원정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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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8·8조치」이후 한때 잠잠해졌던 「아파트」 투기바람이 이번에는 지방으로 번져 다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서울에서 내려간 조직적인 원정투기꾼들이 공무원까지 매수, 무주택 증명을 사들여 서민용임대「아파트」를 무더기 분양받으려다가 법망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들이 노린 것은 주댁공사에서 짓는 서민용「아파트」의 임대권을 따내, 다시 임대를 하려했거나, 임대기간만료후 일반분양을 할때 싸게 분양받아 「프리미엄」을 받고 팔기 위한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수법의 투기행위는 오직 내집마련을 위해 근검절약으로, 꼬박꼬박 돈을 모아 단간 서민용「아파트」에나마 입주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다수 국민들을 울린다는 점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일이다.
「인플레」로 인한 기대이익이 큰 사회에선 으례 투기행위가 성행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우리나라 처럼 과잉된 정부의 개발정책이 강행되는 상황에서는 땅과 「아파트」등 부동산을 비롯, 공급이 부족될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투기의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투기행위의 반사회성은 그것이 전반적인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할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은행금리가 물가상승률에도 못미치게되어 저축을 막고 유휴자금이 투기로 다시 몰리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이번에 구속까지 당하게된 몇몇 주부도 낀 투기꾼들만을 지탄하는 것만으로써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서울에서는 몇억대의 투기를 했어도말썽이 없지않았느냐. 내돈주고 신청을 했는데 그것도 죄가 되느냐』고 했다는 그들의 항변속에 깔린 역리를 깊이 검토해야 할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이란 결국 현실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는 존재로 생존을 위해 물질을 추구하다보면 자칫 무한욕구의 합정에 빠질 수도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번과 같은 투기행위가 범법에까지 이르게된 데는 정부의 주택정책 자체와 사회풍조 전반에도 책임의 일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일억천금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서 남이야 어찌되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투기행위는 건전한 근로정신과 사회윤리를 파괴할뿐아니라 사회계층문의 괴이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엄중한 비만을 받아야 한다. 누구나 원하는바 자기의 재산증식은 투기행위와 같은 단기적인 차익보다는 장기적 안목과 양식의 범위안에서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임을 인식해야겠다.
당면 문제로서는 공공자금에 의한 무주택자용 서민「아파트」건설을 대폭 늘리고 또 불하·하대절차에 있어 더이상 투기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보완이 강구돼야함은 물론이다.
임대「아파트」를 현재와 같이 1년도 못되어 일반분양하는 것은 주택자금의 회전을 위해 불가피한 일인줄은 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정작 입주해야할 무주택자는 입주를 못하고 엉뚱한 투기꾼들의 투기대상이 되고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일이 되풀이 되는것은주택정책의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무주택자에게 내집을 마련해 준다는 정책적 목표가 이룩되려면 공영주택을 많이 짓고 그것을 운영·관리까지 해주는 주택공영화가 바람직하지만 현재의 재정형편으로는 장기적으로 추진해야할 일같다.
우선은 기왕의 임대「아파트」만이라도 입주한 무주택자가 자기자금을 축적, 그「아파트」를 스스로 분양받을 수 있는 기간까지 장기간 임대해 주는 제도를 시급히 시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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