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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짊어질 장한 어린이와 청소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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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랑스런 어린이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명랑하게, 튼튼하게 자라는 어린이들이 상을 받는다. 중앙일보·동양방송이 서울시와 함께 만들어 상을 주는 「서울어린이상·서울청소년상」의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역경을 딛고 일어선 튼튼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대상 소녀가장 한윤정양>이웃삯빨래·신문배달로 8세 때부터 살림 맡아|괴로울 땐 「콩쥐」생각
『괴로울 때나 지칠 때면 언제나「콩쥐」를 생각하곤 해요. 「콩쥐」는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올바로 살아 결국은 행복을 찾았잖아요』―.
아버지·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며 어린 동생을 보살펴온 품팔이 소녀가장 한윤정양(12·서울장안국교6년) .
제1회 서울어린이 및 청소년상 대상수상자로 뽑힌 한양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데 너무 큰상을 받았다며 오히려 수줍어한다.
5년 전까지만 해도 한양의 가정은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단란했다. 그러나 지병인 고혈압으로 고생하던 아버지 한상길씨(당시·42세)가 74년 어느날 회사에서 귀가하던 길에 쓰러져 병석에 누운 뒤부터 가정엔 어두운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했다.
생활에 쫓긴 어머니 김경화씨(40)는 행상길에 나섰고 한양은 8세의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맡아야만 했다.
아버지 병간호는 물론 철없이 칭얼대는 동생 정엽군(당시5세)도 돌봐야했다. 국민학교 1년생이던 한양은 밥짓기·설겆이·빨래·청소 등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한양은 불평 한마디 없이 아버지의 완쾌만 기도하며 공부에도 더욱 열심이었다.
소녀의 간절한 보살핌에도 아버지는 투병 2년만인 76년 가을 끝내 숨졌고 어머니마저 그 충격으로 몸져누웠다. 한양은 가장의 일까지 맡아야했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뛰고 또 뛰었다.
신문배달·삯빨래·쓰레기 치워주기 등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냈다.
한겨울 찬물로 삯빨래를 하느라 손등은 터졌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어야 했지만 한양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말고는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한양은 꾸준히 중학진학금으로 4만8천원을 저축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3개월쯤 지나자 건강을 차차 회복하여 다시 화장품행상에 나설 수 있었다.
한양은 어머니가 화장품행상에 다시 나선 뒤에도 빨래·설겆이·청소는 물론 어머니를 도와 수금도 한다. 한양은 어려움 속에서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16번이나 학업성적 우수상을 받았다. 『슈바이처 자서전』·『장·발장』등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한양의 꿈은 아동문학가가 되어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모든 어린이들에게 밝은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 장학금으로 받게된 1백만원으로 자신과 동생 정엽군의 학비걱정은 없어졌다며 한양은 환히 웃는다. <이창우기자>

<나라사랑 본상 김태한군>1년8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등교, 태극기 올려|부모와 헤어졌어도 꿋꿋
『태극기가 하늘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뿌듯합니다』―.
서울어린이상 「나라사랑」부문 본상을 받게된 김태한군(12·서울 용산구 삼광국교 4학년4반)은 아침마다 남달리 일찍 등교, 학교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올리는 일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은 나라 없는 슬픔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존중하고 아끼는 일에 앞장서기로 마음먹었어요』―.
4학년4반 반장이기도 한 김군이 교내 아침국기게양을 시작한 것은 2학년2학기 때부터.
지금까지 1년8개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침7시30분이면 학교에 나가 태극기를 달았다.
김군의 아버지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77년부터 복역중이며 어머니마저 가출. 고아아닌 고아로 지내면서도 김군은 한번도 낙담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위인들에 대한 책을 읽고는 학급어린이들에게 1주에 한번씩 소개하고 애국하는 바를 일깨워주었다.
김군은 자신의 불운을 딛고 학급의 불우아동·지진아를 매일 방과후 1,2시간씩 특별지도하여 11명의 지진아를 가르치기도 했다.
어머니가 가출한 뒤부터 김군은 2년간 아저씨(김상길·38) 댁(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지내다 지난3월부터 급우 김성우군(12)의 간청에 못 이겨 김군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면 엄마·아빠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며 활짝 웃는다. <문병호기자>

<청소년효행 본상 이은혁군>구두닦이·우유배달 닥치는 대로 병석의 아버지 11년 돌봐|6식구 생계를 혼자 꾸려
서울청소년상 「효행」부문 본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은혁군(18·서울 도봉구 미아2동 791의222). 신문배달·구두닦이·우유배달 등을 하며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 6식구의 생계를 꾸려온 장한 소년이다.
이군이 집안살림을 도맡게 된 것은 국교2학년 때인 68년부터. 폐결핵을 앓아온 아버지 이영하씨(58)의 치료비로 가산은 기울었고 어머니 최정애씨(49)가 길가에서 풀빵장사를 시작했지만 벌이는 보잘 것 없었기 때문이다.
이군은 생각끝에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신문배달에 나섰다.
73년 간신히 국교를 졸업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중학진학은 포기,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76년에는 청구고등공민학고 중학과정을 이수, 고입검정고시에 합격했다.
77년부터는 수입이 났다는 우유배달을 시작했다.
동생 은창군(15·광운중3년)과 은미양(11·수유국교4년)의 학비걱정도 없어졌고 시골에 휴양 보낸 아버지의 병 치료를 보다 정성껏 할수 있었다.
78년 봄부터는 아버지 병세도 크게 호전돼 한가족이 다시 서울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 이군은 우유배달을 하면서 서울고 부설 방송통신고교에 입학,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있다. <권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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