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중략)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 박재삼(1933~97) ‘울음이 타는 가을강’ 중에서

그해에는 여름에도 강이 붉게 타올랐다. 1982년 8월 초순, 제대병은 갈 곳이 없었다. 학비를 대주던 큰형이 부도가 난 데다 큰형수까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향집도 더 이상 팔아먹을 땅뙈기가 없었다. 연극하는 선배의 소개로 강원도 춘천으로 향했다. 선배의 친구가 그곳에서 카페를 하는데, 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라는 것이었다.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탔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시내를 가로질러 터벅터벅 소양강으로 향했다. 강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웅얼거리던 시가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었다.

 결국 ‘울음이 타는 여름강’을 뒤로하고 나는 친구가 사는 대구로 향했다. 그해 대구는 스물세 살 청년을 환대했다. 시 쓰는 선후배, 그림 그리는 선배들이 그야말로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돌아보니 대구 시절 외에도 두어 차례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선배와 후배, 친구들이 손을 내밀었다. 오래된 관계가 가장 든든한 사회안전망이었다. 도움을 하도 많이 받아서 ‘은혜 갚는 법’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아래로 갚자’다. 도움을 준 선생님이나 선배에게 되갚지 말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나 후배에게 갚자는 원칙을 세웠다. 내리사랑 같은 것이다. 은혜를 다 갚으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오래,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야 한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