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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문창극 총리 후보' 의 KBS 보도가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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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황 근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부

“사실적으로는 맞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짓일 수 있는 기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말은 1947년 미국 언론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했던 허친스(Hutchins) 위원회 보고서에 나오는 말이다. 맥락을 제시하지 않고 특정 사실만 발췌해 보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중도사퇴하게 만든 KBS의 보도는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가지고 평가해도 올바른 보도 태도라고 볼 수 없다. 6월 11일 저녁 종합뉴스시간에 톱기사로 내보낸 문창극 후보자의 과거 교회 강연내용 발췌 보도는 일반적인 저널리즘 원칙에서 볼 때도 상식 이하의 보도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비맥락적 보도는 전형적인 폭로저널리즘(muckraking journalism)의 한 형태다. 폭로저널리즘은 1960년대 말 기성 언론에 반발해 객관성이나 중립성 틀을 벗어난 대안언론(alternative journalism)의 한 유형이다. 폭로저널리즘은 72년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기념비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부 선정적 언론이나 정파성이 강한 비주류 언론들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공영방송이라고 자칭하고 있는 KBS가 이 같은 폭로성 기사를 내보낸 것이다.

 실제 보도 내용은 문창극 후보자의 교회 강연 내용 중 ‘일본 식민지나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든지 ‘일본의 지정학이 축복의 지정학’ 같은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해 보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를 본 시청자들은 문창극 후보자가 ‘친일파’이고 ‘반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 발언이 우리 민족이 이러한 위기와 도전을 이겨낸 민족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사라져버리고 있다. 이 때문에 발췌된 발언이 얼핏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도자의 의도와 편향성을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아무리 폭로성 기사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공정정이나 균형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특히 이번처럼 개인 신상과 관련돼 있거나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즉 사실상 객관성이 완벽하게 구현될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균형성을 통해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공정성이 강조되는 방송에는 더욱 중요하다. 그렇지만 첫 세 꼭지의 폭로성 기사 어디에도 정작 당사자인 문창극 후보자의 해명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기사 말미에 청문회에서 해명하겠다는 멘트가 잠깐 나가지만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총리 후보자 과거 발언 보도가 인사검증 절차 자체를 왜곡시켜버린 것이다. 2000년 처음 인사청문회제도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의 인사청문회는 ‘마녀사냥터’ 혹은 ‘여야 정쟁의 장’으로 변질돼 버렸다는 비판이 많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언론사들이 후보자의 과거 전력은 물론이고 가족 및 조상까지 경쟁적으로 들춰내는 여론재판 탓이 크다.

 이는 오랜 인사청문회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크게 차이 나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공직 후보자가 지명되면 2주간 철저한 공식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언론은 청문회에서 있었던 주요 정책 현안과 공직 수행능력 위주의 쟁점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언론과 인사청문회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후보자 개인문제나 과거 전력이 문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처럼 언론이 후보 개인 문제가 인사검증 과정을 통째로 지배해버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공영방송사라고 하는 KBS는 문창극 후보자 관련 보도는 더 신중했어야 했다.

 언론 보도는 사실적인 요소를 기본으로 하지만 객관적인 정보가 아니라 일종에 ‘새롭게 만들어진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즉 뉴스 제작 과정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재구성된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소재를 선택하고 두드러지게 보여주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언론사들은 내부에 몇 단계 게이트키핑 절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창극 후보자 관련 보도는 KBS 내부의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더구나 사장 공백 상태에서 나온 보도라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정치적 독립성 혹은 보도 공정성 문제로 수많은 비판을 받아 온 KBS가 이제는 개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관련 KBS 보도는 결국 후보자 중도사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는 이념 갈등, 정쟁만 더 증폭시켰다.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고 사회적 통합을 책무로 하는 공영방송 KBS의 역할과 위상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사실을 진실되게 보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에 대한 진실을 보도해야 한다”는 말이 다시 피부에 와 닿는다.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