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고 짓고… 2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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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겨레의 가슴속에 독립의 의지를 심어온 독립문-. 석공의 정과 마치가 화강암으로 쌓아 올린 이문의 돌을 두들겨 뜯어낸다.
1979년 4월18일 상오9시. 역사의 흐름 속에 풍상을 겪으면서 독립의 상징이 되어왔던 사적32호 독립문(서울종로구 교북동)이 준공 된지 81년3개월만에 해체작업이 시작됐다.
서울시는 길 한복판에 세워져 흙먼지와 차량매연으로 더럽혀진 채 바로 위로 지나가는 성산대로의 고가차도건설로 주변경관마저 흉해진 독립문과 사적33호인 영은문 주초를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70여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세우기 위해 이날부터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독립문 해체작업은 이날상오 9시 독립문 4기둥 위에 있는 4개의 화강암 옥개석(지름55㎝·무게2백40㎏)중 동북쪽과 서남쪽에 있는 2개를 들어내면서 시작됐다.
이 2개의 옥개석은 문화재 전문석공인 안기호씨(61)등 4명의 석공이 발판을 놓고 올라가 옥개석을 「로프」로 묶어 어깨에 맨 나무받침대로 끌어내리는 4인 목두식으로 옥상에 내려졌다.
서울시는 독립문이전 복원을 위해 지난 3월19일∼4월17일까지 한달에 걸쳐 서울지방문화재위원 김동현씨(문화재관리국 보존과학연구실장)의 진두지휘로 문을 쌓아올린 화강암 덩어리마다 실측조사와 함께 일련번호를 붙이고 방향별 모습을 「필름」에 담는 등 치밀한 계획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표면에 드러난 화강암덩어리는 모두 1천8백개.
옮겨 세울 곳은 독립문 파출소남쪽 8백평의 부지로 서울시는 이곳에 우리나라고유의 수종(수종)을 심고 의자 등 휴식시설을 갖추는 등 독립문공원을 조성한다.
이전공사비는 3억5천6백19만원이며 완공시기는 9월로 잡고있다.
현 위치엔 독립문지만 만들어두기로 했다.
옮겨 세워지는 독립문은 1896년 2월 자주독립의 결의를 다짐하기 위해 사대외교의 상징으로 중국사신을 맞던 영은문을 헌 뒤 그해 11월21일 그 자리에 서재필 박사 등 애국지사와 국민헌금 3천8백52원으로 착공, 1년1개월만인 1898년 1월 중순 준공됐었다.
설계는 서재필 박사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독일공사관의 「스위스」 기사에게 이를 줄여 설계토록 하고 공역은 한국인 심의석 목수에게 맡겼었다.
1936년 5월23일 사적 32호로 지정된 독립문은 높이 14.28m, 폭 11.48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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