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9)제63화 민주당 시대(3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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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차 내각>
구파를 대표하여 반도「호텔」회담에 나간 백남훈 최고위원은 『우리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협조해주기로 했으니 신파에서 내각을 보장하라』고 말해 구파입각 요구를 사절했다.
그렇지만 구파의원총회에서는 삼여론과 거부론이 맞서 밤늦게까지 격론을 벌였다.
소선규·조영규·유옥우 의원 등은 분당을 선언한 마당에 무슨 입각이냐고 강경론을 펴면서 장면 총리가 대표최고위원자리를 양보하고 신파내 극렬 인사를 후퇴시키면 입각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것은 신파가 소위 거당 내각이라는 명분으로 분당을 막아보려고 하는 것을 미리 봉쇄하자는 생각에서 붙인 조건이었다.
신파 안에서는 그들대로 구파의 입각에는 원내 별도교섭단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조건부입각을 역설하는 강경파가 있었다.
입각론의 선봉은 진산이었다. 시국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장 정권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격론 끝에 김도연 박사가 『이번의 입각은「거당 내각」이 아니라 정당간의「연립내각」이라는 것을 장 총리와 합의했다』고 보고해 그렇다면 좋다고 하여 입각이 결정됐다.
명단작성은 백남훈 김도연 유진산씨에게 위임됐다. 실제로는 진산이 크게 좌우하여 그때 진산에게는 구파총리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따라서 그에게 매달리는 의원들이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구파는 나용균 권중돈 김우평 신각휴 박해정씨를 입각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신 의원은 농림장관을 주지 않으면 않겠다고 끝까지 고사하여 나중에 신 의원 대신 조한백 의원을 다시 추천했다.
나도 체신장관 물망에 올라 교섭을 받은 일이 있지만 스스로 장관자격이 없다고 자인하여 이를 극구 사양했다.
구파는 이들을 추천하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소환령에 복종한다는 내약을 했으나 나중 박해정씨는 이에 불응했다.
장면정권의 제2차 내각명단은 다음과 같다.
▲외무=정일형 ▲내무=이상철(전)▲재무=김영선 ▲법무=조재천 ▲국방=권중돈(신) ▲문교=오천석 ▲부흥=김우평(신) ▲농림=박제환 ▲상공=주요한(전) ▲보사=나용균(신) ▲교통=박해정(신) ▲체신=조한백(신) ▲국무원사무처=정헌주(전) ▲무임소=김선태 ▲무임소=신현돈(전)
김우평씨는 장관자리에 앉자마자 신병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2차 조각을 보고 구파에서는 중요한 내무나 상공 재무 농림자리를 모조리 신파에서 다 차지했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았다. 구파가 2차 조각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구파의 분당위기는 해소되지 않았다.
조각 이튿날부터 구파는 연립내각은 분당을 전제한 것이란 점을 거듭 확인했고 중앙상위 등 당 공식기구에의 불참을 재확인했다. 신파에서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단독 교섭단체등록을 위한 서명작업에 들어갔다.
신파안에서 구파가 돌아서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으니 분당준비를 하자는 강경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구파내 온건론자들을 개별포섭하기 시작하는 한편 구파 강경론자들의 제명작업까지 구상했다.
9월21일 시내 외교구락부에 당내 분규사태를 협의하기 위해 선·구파대표들이 모였다.
신파에서 현석호 이석기 김상돈 이철승 임문석 이종남 김준태 김영구, 구파에서는 유진산 양일동 민관식 조영규 최원호 홍춘식씨가 나왔다.
얘기는 『원만하게 분당하여 보수 양당제를 발전시키자』는 구파의 주장과 『원내 안정세력을 위해 분당할게 아니라 무소속 등에서 당을 만들어 보수 양당제를 하자』는 신파 주장으로 맞섰다.
그러는 사이 구파의 영수인 김도연 박사가 22일 하오 신당추진을 공식으로 선언하여 대세를 결정해버렸다.
김 박사는 덧붙여 민주당 의원들 중에 여당이 될 사람은 신파에 붙어도 일체 비난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정국을 안정시키는 길이라는 김 박사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구파의원들 모두가 분당을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나용균 민관식 이충환 의원 등은 신파와의 합작을 역설했고, 유진산 서범석 의원 등은 신파에 안정세력을 형성해주고 보자는 입장이었다. 김의택 이병하 김판술 의원 등도 분당 반대론 자였다.
9월23일 신파가「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등록하자 국회의석은 대충 신파95, 구파86, 민정41, 순무소속 9명의 분포를 보이게 됐다.
소선규 신각휴 의원 등 구파 강경론자들은 절충식 태도를 보인 유진산 이충환 의원 등을 제명하겠다고 추진까지 하는 등 구파 내부가 한때 분당문제로 크게 흔들렸다.
유진산씨와 서범석씨는 처음에 의견이 같았으나 며칠뒤 달라져 서 의원이 김도연 박사의 분당론에 가세해 구파안에서는 분당론이 단연 지배적이었다.
분당될 경우 내각에 들어간 구파 5부 장관을 소환해야 한다고 얘기가 나오자 장관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회합하여 이충환 민관식 의원들의 합작노선을 지지하고 나섰다.
특히 나용균 장관은 분당에 처음부터 반대였으나 나중에 소환에 응했고, 박해정 교통장관은 끝내 소환에 불응했다.<계속>【정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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