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軍은 힘으로, 英軍은 인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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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영국군의 시가전 전술이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

미군이 대규모 인명 살상을 무릅쓰고 힘을 앞세워 성급히 바그다드를 점령하려고 하는 반면, 영국군은 신중한 접근으로 큰 저항 없이 지난 6일 이라크 제2의 도시 바스라를 사실상 장악했다.

뉴욕 타임스는 8일 "영국군의 바스라 장악은 현대 시가전의 훌륭한 모범으로 미군도 본받을 만하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앨버트 휘틀리 영국 육군 소장의 말을 인용, "영국군은 바스라 장악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다섯가지 원칙을 고수했다"며 "이는 북아일랜드 내전 당시의 시가전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휘틀리 소장이 밝힌 첫째 원칙은 인내심이다. 영국군은 시내로 바로 진격하지 않았다. 영국군이 전면 공격에 나서기 위한 군사.정치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 영국군은 시 외곽에서 2주일을 준비했다.

둘째, 도시를 봉쇄하지 않았다. 영국군은 도시를 고립시켜 적군이 도망가는 것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며 민간인 출입이나 식량 공급은 막지 않았다. 셋째, 주민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중시했다. 도시 진.출입로에 세운 검문소를 통해 주민들로부터 적군의 지휘부나 민간인 속에 숨은 적군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넷째, 제한적 공격으로 적 지휘부 건물을 봉쇄했다. 이로 인해 시내에서 영국군이 작전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줘 적이 무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다섯째, 연합군이 주민의 안전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를 위해 제한적으로 시내 진격작전을 벌인 후에는 가져간 음식과 물을 주민에게 제공했다.

휘틀리 장군은 "영국군은 인내심을 갖고 적군의 저항이 크게 약화됐다는 것을 감지한 후에야 전면 공격에 나서 도시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신문은 "영국군이 바스라를 장악한 후 방탄복을 벗었는데 이는 아랍 문화에서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병사들의 안전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미군과 대비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군 관계자들은 "하루빨리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바그다드를 공격하는 미군과 바스라 봉쇄가 주임무였던 영국군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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