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황금의 지배자들|OPEC의 「부부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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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7년5월「사우디아라비아」최대의 유전중의 하나인 「아브콰이크」에서 불이 났다.
삽시간에 「펌프」를 통해 송유관정유 「탱크」로 확산한 이 불은 보름동안 사막의 하늘에 불기둥과 검은 연기를 뿜어댔다.
이 때문에 수개월동안「사우디」의 석유생산은 25%나 감산됐고 『세계를 석유홍수로 뒤덮였다』고 소리치던「사우디」지도자들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사우디」의 보안책임자들은 이 원인 모를 불이 「사보타지」에 의해 일어났다는 증거가 없다고 공식으로 발표했지만 외부세계에서는 이불이 「사우디」의 석유 증산에 불만을 품은 어떤 OPEC회원국의 소행이 틀림없다는 뒷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때의 상황을 보면 그런 혐의를 품을 근거는 충분히 있었다.
25%나 감산시킨 유전화재
76년12월 「카타르」의 수도「도하」에서 열린 OPEC회의는 73년의 획기적 단결이래 최초로 회원국간에 분열을 드러냈다.
「이란」주도하에 11개회원국이 석유가격을 15% (77년l월l일부터 10%, 6월부터 추가로5%)인상키로 한 반면 「사우디」와 「아랍」토후국연방은 5%만 인상하겠다고 결정, OPEC내에 동가격체계가 생겨났다.
OPEC 총 석유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비중으로 회원국들의 의견을 늘 좌지우지해오던 온건파「사우디」가 이 분열에 화가 나서 석유로 『홍수를 이룰만큼』 증산해서 석유가격 인상선을 5%로 억제하겠다고 선언했었다.
이러한 「사우디」의 위협앞에서 OPEC의 2인자인 「이란」의 「팔례비」왕도 칼을 뽑았다.
공개적으로는 계속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배후에서 「팔례비」왕은「사우디」지도자들에게 『만약 당신들이「이란」에 피해가 올만큼 석유증산을 한다면 우리는 그걸 침략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뜻을 점잖게 함축하는 특성을 가진 외교용어로 볼때 이 말은 사실 최후통첩과 같은 무게를 갖는다.
인구면에서 「이란」의 7분의l, 군사면에서는 아예 상대도 되지 않는「사우디」로서는 그런 협박이 예사로 들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에 불이 난 것이다.
그것이「사보타지」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이 불은 결과적으로는 폭발직전으로 치닫던 두 석유거인간의 충돌을 방지해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앙이었다. OPEC내부에서는 그후에도 끊임없이 이전투구가 계속되었다. 문제는 석유공급량을 제한함으로써 석유가격의 인상을 유도하려는 OPEC의 전체의도와 최대한 생산을 해서 이익을 증가하려는 개별적 이해가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데 있다.
고무풍선과 어미돼지젖줄
석유시장의 수요공급상황을 이야기할때 흔히 고무풍선에 비유한다. 적정선이 이루어진 상태의 풍선을 놓고 어느 한쪽을 당기면 다른 한쪽이 쭈그러들게 되어있다.
OPEC회원국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다 단순화시켜보면 돼지새끼에 비유할 수 있다. 8개의 젖꼭지를 가진 어미돼지에 10마리의 새끼가 달렸다고 하자. 젖끅지는 수요를 나타낸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두 마리의 새끼는 젖꼭지를 차지하지 못하게된다.
젖꼭지를 늘리면 과잉공급으로 석유가격이 떨어지니까 OPEC 스스로가 젖꼭지를 제한해 놓고 서로 더 먹으려고 싸우는 것이 내부의 상황이다.
세계석유시장의 총수요는 대개 하루 4천3백만「배럴」이고 OPEC가 이중 80%인 3천2백만「배럴」을 생산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 하루 1천50만「배럴」의 생산능력이 있지만 8백50만「배럴」로 자진해서 생산규모를 정해놓고 있다.
지금까지 감산의 필요가 있을 때마다 감산의 큰 몫은 재정여유가 있는 「사우디」가 맡아왔다. 그런 역할 때문에 다른 회원국들은「사우디」가 석유가격의 안정을 주장할 때 크게 반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우디」가 그런 역할을 맡도록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회원국들의 생산량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요즘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여기서도 규제의 근거를 무엇으로 삼느냐는 문제를 놓고 서로 이해가 엇갈리고있다.
규제의 기준따라 이해상충
각자에게 돌아올 감산할당량을 최소한 줄이려고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놓고 있는데 그것은 인구·매장량·전년도 생산량·개발재정의 필요정도·석유수입에의 의존도 등 각양각색이다.
유가문제에 있어서도 OPEC는 강경·온건·중립의 3「그룹」으로 나누어진다.
강경파는 「이란」「이라크」「리비아」「알제리」「베네쉘라」등 매장량이 적거나 국내 개발계획의 재정상황이 급박한 나라들이고 온건파는「오일·달러」가 남아돌아가는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토후국연방, 「카타르」, 나머지「인도네시아」「나이지리아」「에콰도르」「가봉」이 중립이다.
OPEC가 내세우는 유가인상의 이유는 ▲서방시장의 계속되는 「인플레」 때문에 그들이「오일·달러」로 사들이는 공산품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점과 ▲유가의 책정기준인 「달러」화의 하락으로 생기는 실질가격의 저하 등이다.
「달러」가치의 하락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OPEC는「달러」나 OPEC회원국화폐가 아닌 4∼15개의 화폐를 묶어서 유가책정기준 화폐로 삼기위한 4가지방안을 연구중이다. 가격산출 기준을 이렇게 변경할 경우 유가는 자동적으로 현재 수준에서 5∼20%가 오르게 된다고OPEC관계국은 보고있다.
야마니는 "고독한 이단자"
그러나 이 방법도 「사우디」가 극력 반대하고 있다. 「사우디」 석유상 「야마니」는 『석유무기를 잘못 사용하면 총알이 빗나가 쏜 사람이 맞아 쓰러질 가능성을 경계해야 된다』는 말로 「사우디」의 가격운영정책을 설명해왔다. 그래서 강평파들은 「야마니」를 「고독한 이단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우디」가 이를 기피하는 이유는 그러한 조치가「달러」화 하락을 더욱 부채질해서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점과 또「사우디」의 외환보유고의 80%이상인 6백50억「달러」가 「달러」화 평가로 투자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가인상에서 보이는 OPEC의 단결뒤에는 분열의 요소가 많다.
OPEC관계자들은 이런 분열상을 부부싸움에 비유하면서 부부간에 자주 싸운다고 가정이 파탄되는 것은 아니잖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석유소비국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내분의 요소는 OPEC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다는 유일한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것이고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들은 이 분열요소를 이용해서OPEC를 어느정도 원격조정해온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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