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일터는 밤하늘"|국립천문대 소백산 천체관측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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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관측 준비완료. 벽시계의 바늘이 하오9시40분을 가리키고있다.「돔」(천체 관측실)에서 보이는 겨울밤 하늘은 이젠 경이와 신비의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감시와 추적의 표적일 뿐이다.
별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은하의 구조·운동, 그 구성물질은 무었인가. 태양의 활동에 변화는 없는가. 우리 나라 상공을 통과하는 각종 인공위성의 위치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아>
관측할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다. 곧 날이 샐 테니까. 그리고 기상조건이 항상 좋지만은 않다. 게다가 관측한 결과를 일일이 특수「카메라」로 촬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망원경과「카메라」를 겨우 대 여 섯번 조작하다 보니 벌써 새벽4시다.
관측은 끝났다. 그러나 곧 암실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촬영한 우주사진의 결과을 확인해야 되니까.
그리고 관측일지를 기록한다. 시간은 아침6시30분. 취침시간이다. 낮 12시까지 5, 6시간 충분히 잠을 자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는 낮과 밤을 완전히 거꾸로 살아야 합니다. 낮에는 천체관측이 불가능하니까요. 게다가 눈이 쌓이는 겨울철에는 식수가 떨어지는 데다 교통마저 끊기기 때문에 흡사 원시인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잡급직 합쳐 모두11명>
연구원 4명(상주하지 않고 서울에서 교대로 파견된다)전기기사 l명, 기계기사 1명, 운전사 l명, 잡급직 3명 등 기껏 11명의 인원으로 국립천문대(대장 민영기 박사)소백산 천체관측소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심경진 소장(38)의 24시는 차라리「숭고한 것」으로 표현하는게 옳겠다.
충북 단양군 소백산 제2 연화봉의 대지 2만8백20평에 본관 및 61cm반사 망원경「돔」60평, 첨성관 및 공작실(20cm태양망원경「돔」) 90평, 발전실 25평, 숙소 30평 등 연건평 2백5평의 소백산 천체관측소의 건설공사가 시작된 것은 73년 8월. 대통령령 3399호인 국립천문대설립위원회 규정 제정(68년3월)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9월 가까스로 준공되었지만 장비와 인원이 너무 빈약해서 겨우 초보적인 친체관측을 하고 있을 뿐이다.『최신 고성능 장비를 갖추는 것은 당장 어렵다고 할지라도 연구원과 기술요원의 대우 개선은 아주 시급합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연구원이 벌써 4명째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버렸어요. 아직 중원이 안되고 있습니다』

<대우 낮아 이직자 늘어>
연구원의 경우 모두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를 보유하고 있는데도 대우(3을)는 기업체의 대졸 초봉만도 못하니 충원의 어려움을 알지 않겠느냐는 심 소장의 자조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는 느낌이다.
해발 1천3백90m높이의 산봉우리에 관측소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11월 중순에 시작해서 4월초에나 끝나는 겨울철에는 혹한과 적설로 이곳은 외부와 거의 단절된 고도가 된다.
그래서 길고 지루한 동면을 위해 11월초에는 5개월 분의 식량과 연료, 그리고 부식을 미리 비축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지난번에는 쌀 10여 가마와 기름50「드럼」을 준비했었습니다. 2백 포기의 배추로 김장김치를 담갔는데 요즈음이 가장 별미예요. 김치 외에 부식으로는 김이라든지 건어물 같은 주로 마른 것을 준비합니다.』
전기기사인 이재한씨(22)는 식량이나 기름은 별 문제가 없는데 식수확보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고충을 말한다. 눈이 쌓이는 겨울철에는 눈을 녹여서 명반을 넣고 2∼3시간 끓여 식수로 사용할 수 있어 그대로 괜찮지만 가뭄이 계속되는 여름에는 모두가 죽을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천직" 다짐 없다면>
다행히 산정관측소에서 마을이 있는 죽령까지 험준하지만 5m폭의 길이 최근 닦아져서 식수를 비롯해서 생활필수품을 관측소 소속「지프」로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겨울에는 적설로 길이 끊기고 만다.
『천직이라는 다짐이 없다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큰일 이예요. 천체관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전기분야인데 겨우 1명뿐인 전기기사 이씨 마저 곧 방위소집으로 그만 두어야할 실정이니 말입니다』
지금 관측소의 기능으로 보아 최소한 3명의 전기기사가 있어야하는데 기사 자격증 소지자에게 고작 8만원의 월급이니 확보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심 소장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글 김영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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