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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무라야마 담화도 흔들려는 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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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 강행에 대해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재협상 카드를 동원해서라도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학준)이 23일 개최한 고노담화 검증 관련 긴급 전문가 토론회에서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윤명숙 충남대 국가전략연구소 전임연구원이 그런 주장을 했다. 그만큼 토론회 참석자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교섭의 경위’ 보고서의 의미, 일본 정부의 숨겨진 의도,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두고 일제히 우려와 경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고노담화의 내용 자체는 수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보고서의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고노담화를 수정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연구원은 “1993년 고노담화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의 설치·관리 등에 대한 기술에서 강압적인 느낌의 ‘지시’ 같은 표현 대신 군의 ‘요청’ ‘직접 또는 간접 관여’ 등으로 표현의 강도를 완화하는 한계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남 연구원은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은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담화가 나오게 된 한국 정부와의 협상 경위 공개에 주력했다. 게다가 경위 보고서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의 강제성을 동원 과정의 강제로만 협소화시켰고 강제 연행을 증명할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부각시켰다”고 분석했다. 이는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아베 1차 내각의 각의 결정이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으로,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공언과 달리 사실상 수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무리수를 일본 정부가 강행한 배경은 뭘까. 단순한 역사 인식의 차이는 아니라는 해석이다.

 토론자로 나선 성공회대 양기호(일본학) 교수는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교과서 문제 등 한국과의 전선을 계속 확대해 왔다. 앞으로 고노담화는 절반 사문화시키고 태평양 전쟁과 식민 지배에 대해 사죄한 95년 무라야마 담화는 약화시키려 할 것 같다”며 “이번 보고서는 그 중간 과정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실효성 있는 대응책에 대한 고민도 논의됐다. 윤 연구원은 “93년 고노담화 발표 당시에는 담화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담화 내용을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 정부가 일관된 입장 없이 일본 정부의 행동에 그때그때 대응해 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건국대 조시현(법학) 교수는 “이번 일본 정부의 행위로 인해 고노담화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것으로 본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맺지 않으면 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한·일 당사자가 아닌 제3의 기구를 설립해 위안부 피해에 대한 객관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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