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7200억 연구소 국가 헌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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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이 산하 포항가속기연구소를 국가에 기부하기로 했다. 1991년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건설·운영에 총 7198억원이 들어간 시설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 측은 23일 “이미 운영 중인 방사광가속기와 건설 중인 새 방사광가속기를 정부에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포스텍 법인 이사회가 승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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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채납 거론은 국회에서 시작됐다. 지금까지 가속기연구소에 들어간 비용 7198억원 중 5556억원(77%)이 국가에서 나온 돈이어서다. 올해의 경우 운영비 331억5000만원 중에 포스코와 포스텍이 대는 것은 4억5000만원뿐이다. 이 때문에 예산 심의 때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특정 사립대 연구소에 왜 엄청난 국가 예산을 이렇게 많이 주느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럴 바엔 아예 국가시설로 바꾸자고도 했다. 포스텍 역시 운영 자금이 달려 기부를 추진했다.

 하지만 “사학재단의 재산은 국가에 기부할 수 없다”는 사립학교법 조항이 문제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회가 공공 목적일 경우 국가에 기부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쳤다. 이로 인해 포스텍의 기부가 탄력을 받게 됐다. 기부 대상은 가속기 2개와 건물 및 부속시설, 부지까지 포함됐다.

 기부가 이뤄지면 가속기연구소는 정부출연연구소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경상북도는 이를 기화로 삼아 포항·경주 지역이 ‘동해안 연구개발(R&D) 특구’로 지정받도록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R&D 특구로 지정받으려면 그 지역에 정부출연연구소 3곳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포항과 경주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포항분원과 경주 양성자가속기연구센터 두 곳뿐이다. 포항가속기연구소가 정부출연연구소로 바뀌면 R&D특구 지정 요건을 일단 갖추게 된다.

 포항·경주 지역에는 가속기 말고도 여러 기초과학 연구 시설이 있다. 2001년에는 포스텍 안에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가 자리 잡았다. 현재 13개국 연구진이 와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제 이론물리연구소다. 2011년에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역시 포스텍에 ‘아토(atto) 초 과학 및 복합물질 연구센터’를 설치했다.

 이런 기초과학 인프라를 갖고 있으면서도 연구 성과를 응용해 산업화한 실적은 미흡했다. 거액을 들여 응용기술을 개발하려는 기업들이 별로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포항은 포스코란 세계적인 기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지역내총생산(GRDP)이 경북 구미에 역전당했다. 그래서 경북도가 생각한 게 R&D특구 지정이다. 지정되면 기업들이 R&D 비용 지원과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 이를 기반으로 기업을 끌어들이고, 또 기술벤처들의 창업을 유도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목표다.

 현재 R&D 특구로 지정된 곳은 대전·부산·광주·대구 네 곳이다. 김준한(61) 대구경북연구원장은 “동해안 R&D특구가 지정되면 여기서 나온 기초 연구 성과를 다른 특구로 확산시키는 게 한층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경주=송의호 기자

◆방사광가속기=전자나 양성자처럼 전기를 띤 아주 작은 입자를 가속시킬 때 나오는 강렬한 빛(방사광)을 이용해 물질의 구조를 사진 찍듯 알아내는 장치. 국내에서는 1500억원을 들여 만든 포항방사광가속기가 95년 가동을 시작했다. 이를 이용해 국내 벤처인 크리스탈지노믹스가 비아그라의 구조를 밝혀 그 결과를 세계 최고 학술지인 ‘네이처’에 게재했다. 그 옆에 4000억원을 들여 짓고 있는 새 가속기는 물질 구조가 순간순간 어떻게 변하는지 동영상처럼 촬영할 수 있다. 이런 가속기는 현재 전 세계에 미국과 일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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