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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전까지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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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런던특파원

1950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잉글랜드가 미국에 1대0으로 졌다.

 지금은 그랬었나 심드렁할 게다. 당시엔 월드컵 축구사에 길이 남은 이변 중 이변이었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신문을 통해 소식을 접하곤 오자(誤字)가 났다고 여겼다. 잉글랜드가 1대0으로 이기면 이겼지 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잉글랜드는 ‘축구의 왕’이었다. 실력 차를 이유로 월드컵을 외면하다가 일종의 ‘시혜’ 차원에서 브라질 대회부터 출전한 거였다. 직전 평가전에서 이탈리아를 4대0, 포르투갈을 10대0으로 눌렀다. 실제 압도적 기량이었다.

 반면 미국은 급조된 팀이었다. 헤딩골을 넣은 조 게이전스는 미국 시민권자도 아니었다. 아이티 출신으로 뉴욕의 한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게 부업이었다. 미국전 패배의 충격 때문인지 잉글랜드는 스페인에도 졌고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길고 긴, 잉글랜드의 우울한 월드컵 축구사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64년 만인 오늘 잉글랜드가 바로 그 ‘참사’의 현장에서 다시 경기를 치른다. 브라질의 벨로 오리존치다. 이탈리아·우루과이에 연속 패배, 탈락이 결정된 잉글랜드로선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느낌일 게다.

 사실 잉글랜드는 ‘만년 우승 후보’로 불리지만 실제 우승은 지난 세기(66년)의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그 외엔 늘 좌절해온 잉글랜드인의 심리에 대해 『사커노믹스』는 이렇게 분석했다.

 1단계는 월드컵 직전으로 우승할 것이란 확신에 부푼다. 막상 월드컵에선 과거 잉글랜드와 전쟁을 치른 나라와 만나고(2단계) 유독 잉글랜드만 불운을 겪으며(3단계), 상대팀들은 모두 더티 플레이를 한다(4단계). 이 때문에 매번 우승은커녕 우승권으로 보기 어려운 단계에서 탈락하지만(5단계) 잉글랜드인은 다음 날이면 평상심을 되찾고(6단계) 한동안 희생양 찾기에 골몰하다가(7단계) 어느덧 다시 우승할 것이란 기대감에 설렌다(8단계).

 이번에도 그랬느냐고? 우승할 전력이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국인 이탈리아와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다 2 대1로 패배하자 16강은 당연하다고 열광했다.

 그러다 불과 5일 만에 열기가 냉기로 바뀌었다. 우루과이에 져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이 확정되어서다. 곧 3∼7단계의 일이 벌어졌다. 무릎수술 후 회복엔 6주가 걸린다는데 우루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4주 만에도 멀쩡해지는 희귀 생체 기능의 소유자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필이면 잉글랜드가 사랑하는 캡틴 스티븐 제라드가 빌미를 제공하다니. 불운의 연속이었다. 잉글랜드 공격수 웨인 루니는 경기 후 “정직하게 플레이한 우리가 순진했다”고 푸념했고 감독은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 국가대표팀이 아프리카팀에 처음으로 패배, 탈락 위기에 처했다. 조용필이 노래했나.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잉글랜드란 팀도 있는데, 비판은 잠시 미루고 마지막 벨기에전까지 선전을 기원하자. 대한민국~.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