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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의 반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간다」는 그 국명보다는 집권자의 이름인 「이디·아민」으로 더 유명하다. 신장1백90㎝, 체중1백30㎏, 왕년의 「우간다」육군 「헤비」급 「복싱·챔피언」. 훈장이 고드름처럼 매달린 군복의 장군. 아마 그의 이런 모습은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언행은 세계의 「매스컴」이 즐겨? 다루는 우스개감의 하나다. 설마싶은 얘기들이 예사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의 흑인지도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백인에 대한 증오심이 누구 못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모반혐의로 영국인주교를 처형한 일도 있었다. 1975년엔 영국의 한 유력한 실업인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었다. 그 무렵 영국외상 「캘러헌」은 기겁을하고 수도「캄팔라」로 날아갔다.
「아민」대통령은 이때 천장이 낮은 오두막속에 앉아서 그를 맞아들였다. 「캘러헌」외상 일행은 무릎을 꿇고 얘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민」은 바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언젠가는 야외 「리셉션」에 행차하면서 가마를타고 그것을 백인들이 짊어지도록 했었다. 그의 「쇼맨십」은 이정도로 「새디스티」하기까지 하다.
「우간다」는 「아프리카」대륙의 동안에 자리잡은 한반도의 크기만한 나라다. 인구 1천만. 면화와 「코피」를 수출하는 농업국.
이나라도 「아프리카」제국의 공통된 고민거리인 「다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려 40여 부족이 엉겨 산다.
「아미」은 빈농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이라고는 받아본일이 없었다. 청년「아민」은 「아프리카」수비 「라이플」부대의 일원으로 영국육군에 입대했다. 이것이 출세의 인연이었다.
「우간다」가 영국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이 되자 다부족간의 분쟁이 잇달았다. 「아민」은 그틈에 장군이 되고 끝내는 「쿠데타」로 집권까지 했다. 197l년의 일이다. 「아민」 은 신사풍의 통치보다는 폭력에 의한 통치에 더 능했다. 「앰니스티·인터내셔널」의 보고에 따르면 『「아민」이 직접·간접으로 책임을 져야할 살인』이 30만명이나 된다. 임신한 그의 한아내에게 임신중절수술을 해주었다고 그 담당의사와 아내를 처형한일도 있었다.
그러나 「아민」의 「쇼맨십」「그로테스크」한 언행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겠다. 서방의 교양있는 「저널러스트」들은 백인증오에 대한 반감으로 그를 경멸하는 점도 없지 않다.
기괴한 면만을 조명하는 것도 그때문이리라.
요즘 그 「우간다」엔 군부반란이 일어나 「아민」은 존망의 위기에 있는가 보다. 희극이될지, 비극이 될지 아직은 두고 보아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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