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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안주겠다』는 각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는 업체로부터 공무원등 에게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로 했다.
지난 4년간의 서정쇄신운동은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는 부패의 수요측면만을 주 대상으로 해왔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양면이 있는 부패를 수요측면에서만 접근해본들 그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올 들어 정부가 공무원등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부패의 공급측면에 대해서도 똑같은 관심을 기울이기로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런 일이다.
기업이나 개인이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까닭은 더 큰 이익이나 편의를 얻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사리를 위해 국가행정 과정을 왜곡시키려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공무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품을 받고 증회자에게 편리하게 행정과정을 왜곡시켜준다.
이러한 양쪽의 사리를 위한 행정의 왜곡은 일반국민들의 불이익으로 전가되고 결국은 국가의 기강을 해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금품을 제공하여 부패를 유도하는 측까지도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볼지 모르지만, 그러한 부패풍조가 만연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면치 못하게 된다.
때문에 단기적으로 이득을 보는 증회자의 처지에서도 이렇게 뇌물을 제공해야만 하는 풍토는 없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작년의 「아파트 사건에서 대표적으로 노출되었다시피 요즘에는 기업의 금품공세가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가 금품제공을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로 한 이 기회에 기업들도 부패의 공범자란 불명예를 씻는 일대자각이 있어야 하겠다.
기업인들도 꼭 좋아서 금품을 제공한 것이 아니니 만큼 이번의 각서는 활용하기에 따라선 과거의 뇌물제공 타성에서 벗어날 좋은 구실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증수회자의 쌍벌을 철저하게 한다는 정부방침에는 약간의 문제점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서정쇄신이 본격화된 이후부터 부정부패 행위는 은밀화해져 가고 있다. 이번 조치로 잔존부조리 행위는 더욱 은밀화 할 것이 예상된다.
이렇게 부패가 은밀해 지면 증수회자간의 결탁이 굳게돼 공직사회와 업계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익공동체가 형성될 위험이 없지 않다.
또 부패자체의 축소보다도 부패행위의 색출 자체만 더 어렵게 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부조리를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지금 같은 강력한 의지의 지속성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있다.
만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이를 믿고 정부방침에 적극 호응한 사람만 나중에 집중적인 손해를 보기가 십상이다.
그야말로 『의리 없다』고 공무원들이 집중적으로 매장을 하려들는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뇌물은 주고받는 쪽에 다 문제가 있지만, 사리로 보면 역시 주는 쪽보다는 받는 쪽에 조금이라도 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서정쇄신의 심화를 위해 양면접근을 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나 그 중점은 역시 공직자의 단속에 두어야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이 기회에 서정쇄신의 성공여부가 부조리 추방노력의 지속성과 함께 공무원의 생활급 보장에도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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