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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였던 할머니가 주신 진주 2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내가 시집을 오기 전 어느날 연로하신 친정 할머님은 초라한 삼베주머니 속에서 다섯개의 콩알만한 진주 알을 펼치면서 그중 두알을 고르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님이 간직한 그 진주 알들의 내력을 잘 알고 있는 터였고 언젠가는 큰손녀인 내게 한알쯤은 주시리라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주신다 하니 가슴은 뛰었고 욕심을 내어서 그중 가장 크고 고른 모양을 두알 골라냈다.
제주도 태생이신 할머님은 열살부터 60세까지 50년 동안을 해녀로 활동하셨다. 날씬하고 강단 있는 체구를 지니신 할머님은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소라나 전복을 많이 따냈기 때문에 고향에서 가장 이름난 해녀이기도 했다. 할머님은 수십년간 자신이 딴 전복에서 크고 작은 진주 알들을 무심코 모으시기 시작하셨다한다.
그러나 그 시절만 해도 서양에서나 진주를 중히 여겼고 우리 나라에서는 옥이나 비취에만 관심을 두었지 진주는 하찮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러는 달라는 사람에게 나누어줘 버리고 아무데나 두었다간 해녀 생활을 그만두실 즈음에야 그 기념으로 나머지를 그때껏 소중히 간직해오신 것이다. 나는 할머님에게서 받은 두알의 진주를 할머님의 한평생 신비스런 바다 생활에서 얻은 보물이라고 생각하면서 무엇보다 내겐 값지고 인상 깊은 선물로 생각해왔고 결혼 생활 20년 동안 남몰래 간직해 왔었다.
그런데 며칠 전엔 만 20세의 성년이 된 맏딸에게 할머님의 진주 알을 아무런 아쉬움 없이 넘겨줬다. 딸애에게 그 진주 알처럼 마음 곱고 바르게 살아가라는 교훈과 함께 말이다. 딸애는 뺨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20년 전 내가 할머님에게서 그 진주 알을 받을 때 못지 않게 딸의 가슴은 뛰었을 것이다.
양기숙 <서울 서대문구 응암동 73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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