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명희<주부·서울 불광동 312의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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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딸아이의 대학 합격은 우선 기쁘고 또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기쁨을 채 음미도 하기 전에 나는 아직 불합격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딸아이의 친구가 생각나 나만이 좋아라고 기뻐하던 마음이 일순 부끄러워지고 조심스런 마음이 된다.
딸아이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지난 1년 동안 대학 입시 준비를 하느라 사과같이 아름답던 뺨이 핏기를 잃었고 초롱초롱하던 두 눈은 수면 부족으로 늘 피로를 담고 있었다. 초조와 불안과 불면이 항상 그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도 지금 불합격으로 실의와 비통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지난 1년간은 사실 뒷바라지를 해온 나나 대학 입시 준비를 하는 딸아이 모두에게 무척 길고 불안하고 힘든 한해였다. 한마디로 지옥 같은 한해였다. 딸아이는 새벽 6시 2개의 도시락과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고 저녁 6시가 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부랴사랴 저녁을 끝내고는 다시 제방에 처박혀 밤늦도록 공부에 몰두했다.
노상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딸은 신경이 날카로와져 걸핏하면 엄마인 나나 가족들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눈물을 흘렸다.
엄마는 노상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심정으로 딸아이를 바라봤다. 차라리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하고 생각한 것도 몇번이었는지 몰랐다.
끊임없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누구는 일류 선생에게 과목 당 얼마를 주고 과외를 한다느니, 누구는 또 새벽과 저녁에 자가용을 타고 오는 대학 교수에게 특별 지도를 받는다느니 하는 소식들은 가끔 나를 능력없는 에미라는 자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어마어마한 (?) 액수의 수업료를 내고 한국 최고의 과외 선생들을 번갈아 모시고 공부한다는 어느 과외 「팀」의 얘기를 딸아이의 입을 통해 들은 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기를 쓰며 공부하는 딸아이를 부모가 무능하여 좋은 과외를 못시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슬펐다.
사람들은 고등학교 3학년생들의 지나친 과외 열풍을 비난한다. 값비싼 과외를 시키는 부모를 나무란다. 그러나 입시를 눈앞에 둔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행여 부모가 뒷바라지를 못해 자식이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돈이 있는 부모는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무리를 하게되고 그것이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같다. 딸아이가 고 3이었던 초기에는 과외 공부하지 말고 혼자의 예습·복습만을 충실히 하자고 딸과 굳은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는 자꾸 불안해졌고, 드디어 여름방학에는 과외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반드시 과외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합격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불합리한 현재의 대학 입시 제도는 바꿔져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수층의 돈 자랑 기회처럼 돼버린 오늘의 과외 풍토는 너무도 불필요한 정신적·경제적 낭비를 강요한다.
또한 대학 입시를 치른 젊은이들은 합격이라고 자만하지 말고, 불합격이라고 너무 실망하여 비탄에 잠겨 있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흔한 이야기지만 반드시 일류 학교 출신이라야 훌륭한 사회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작은 지금부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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