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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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감님 대갈님에 검불님이 붙으셨다』는 속어가 있다. 지나친 예의는 오히려 공손치 못하다는 것을 빗대서 하는 말이다. 에의도 그 시대의 감각에 맞추는 것이 자연스럽고 절도가 있어 보인다.
법원이나 검찰에 가보면 서기를 제외하고는 영감 아닌 사람이 없다. 세대도 직위도 없이 저마다 영감이다. 의관을 갖추고 긴 담뱃대를 문 할아버지를 연상하는 사람에겐 도무지 의아한 일이다.
영감은 본래 종이품·정삼품의 관원을 부르던 존칭으로 대감다음의 지위. 이를테면 포도대장(포도대장-종이품) 이나 관찰사(정삼품)등을 영감이라 했다. 지금으로 치면 치안본부장이나 도지사등의 존칭인 것이다. 일명 영공이라고도 한다. 영감의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연원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신라때에 이미 영·감등의 관직이 있던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전부터 쓰인 것같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이 관리나 노인을 높이보는 우리의 풍습에 따라 사회적으로 지체가 높거나 나이 많은 남자를 영감이라고 불렀다.
요즘은 중년을 넘긴 부인이 남편을 흔히 영감이라고 한다. 언젠가『영감…』『왜 불러.』 와같은 속요조의 유행가도 풍미했던 일이 있었다. 그「영감」이란 호칭엔 어딘지 인생의 고락을 함께 해온 초노의 부인에게서 풍기는 은근한 애교가 엿보여 미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관리는 고하를 막론하고 영감이라고 부르는 습성은 일제시대의 유물인것 같다. 관가에서 영감이란 말의 여운이 유쾌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때는 도대체 조선인이 관직에 발을 들여 놓는 일조차 어려웠다.
벼슬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군수나 판검사등 이른바「고등관」이상의 사람들에겐 영감이라는 존칭을 썼다.
해방을 맞고도 그 시속만은 바뀌지 않았다. 관리가 넘치는 것에 비례해서 영감이란 칭호도 남발되었다. 특히 법관들 사이에 그것은 서슴없이 유행되었다.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는 것은 또 몰라도 그들 서로가 그렇게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지는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1962년 8월7일 그런 호칭의 비민주성을 지적하고 영감이란 말을 없애도록 지시했었다. 그 지시가 과연 며칠이나 시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번엔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관들이『관료주의적인 낡은 권위의식을 배격』, 민주검사의 품위를 지키라는 특별지시를 했다. 이말을 듣고 얼핏 떠오르는 생각은「영감의식」이다. 혹시나 영감의식속엔 포도대장이나 관찰사의 그림자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선 그 영감의 너울부더 벗어던지는 것이「관료주의적 권위의식을 배격」하는 길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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