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병원 앞에 버려졌던 미국 입양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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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만든 포스터 앞에 선 케이트 허스. 그는 2000년에 만나 인연을 맺은 원한광 박사(연세대 설립자인 언더우드 박사의 4대손) 부부를 사실상 "한국인 부모"라고 일컫는다.임현동 기자

그에게 4월 3일은 특별한 날이다. 지금은 생일로 돼 있는 1976년 그날, 그는 서울의 한 병원 앞에 버려졌다. 보육시설과 입양기관을 거쳐 같은 해 9월 미국 디트로이트의 한 독일계 가정에 입양됐다.

지난 3일 새벽. 스물아홉이 된 그가 다시 그 병원을 찾았다. 자신의 생후 3개월 때와 지금 모습이 담긴 '사람을 찾습니다'란 포스터와 엽서를 잔뜩 들고서였다. 그는 3시간여 병원 주변 동네에 포스터 100여 장을 붙였다. 낮엔 행인들에게 엽서 300장을 돌렸다.

"적어도 이날 만큼은 친부모도 내 생각을 하겠지요?"

담담한 표정으로 되묻는 그는 한국계 미국인인 케이트 허스다. 그는 세계 20여 개국에서 공연한 경력을 갖고 있는 행위예술가다. 미국 일리노이주 예술위원회 공로상을 받은 적도 있다. 한때 디트로이트 예술대학과 계원조형예술대학의 강단에도 섰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내년에도 할 겁니다. (가족을 찾을 때까지) 매년 생일마다 할 거예요. 친부모가 여전히 이 근처에 살고 있을 지 모르니까…."

그의 이런 결정이 개인사적 집념에서만 비롯한 건 아니다. 그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포스터를 붙이고 엽서를 돌리는 행위를 하나의 퍼포먼스(행위예술)로 여기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행방불명된 사람들 프로젝트, 예술가적인 간섭, 2005년'(www.katehers.com)이란 제목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적 현실에서) 친부모 찾기는 대개 언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으로 볼 때 상당히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웠어요. 입양인이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느낌이었어요. 무조건 TV 앞에서 상봉해야 한다는데, 왜 모든 사람이 그 장면을 보게 해야 하죠?"

97년 연수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벌어졌던 소동을 두고 한 말이다. 그 뒤 그는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 이번 퍼포먼스를 기획하게 됐다.

"지금의 양부모를 무척 사랑한다"는 그에게 "왜 친부모를 찾으려 하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져봤다. 그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답했다.

"내 부모 형제는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지, 특별한 가족 병력은 없는지… 여러가지로 궁금한 게 많아요."

오랜 세월 안으로 곱씹고 삭여서일까.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사실 난 내가 한국인인지, 한국계 미국인인지, 혹은 미국인인지 하는 정체성 문제보다 더 큰 이슈에 매달려왔어요. 인간 그 자체에 말이에요. 누가 만일 나에게 (정체성을) 선택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아요."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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