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곤욕…종이가 모자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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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종이값 인상설이 나도는 가운데 종이류 품귀현상이 3개월 째 지속돼 출판사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정기 간행물의 발행일이 늦춰지는가하면 군소 출판사들은 책 발간의 지연으로 자금회전이 순조롭지 않아 울상이다. 자칫하면 신학기가 되어도 학생들의 손에 교과서가 들어가기 힘들지도 모르는 형편에 있다. 새로 개편되는 2종 (검인경) 교과서의 생산 공정이 종이부족으로 1개월이나 늦추어졌기 때문이다.
2종 교과서 합격본을 낸 40개 출판사 대표가 모인 한국 2종 교과서 발행조합의 생산과장 서원석 씨는 원래 l윌 말까지 제작을 끝내기로 했던 일정이 종이 파동으로 인해 2월말에나 마쳐질 예정이라면서 작년 12월 종이품귀현상이 극심할 때는 공장출고가 끊겨 도매업자들에게 웃돈을 얹어주면서 가까스로 종이를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서서히 조짐이 나타난 종이파동은 매년 닥치는 「캘린더」제작「러시」에 선거용 벽보, 각종 홍보자료가 일시에 몰아닥치면서 가속됐다.
연말·연시에 맞춰 발행하려던 월간잡지나 출판사들의 「특별기획물」도 이 때문에 제작이 늦어져 「타이밍」을 못맞췄다고 안타까워한다.
학원출판사가 발행하는 J지의 경우도 2월 호를 1월1일자 발행일에 대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고 권오운 주간은 돌이킨다. 이는 어느 정도 신용이 보장된 출판사의 형편이고 종이 도매업자에게 단골거래선이 되지 못하는 군소 출판사는 발행일을 늦춰 대목을 놓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진출판사로서는 비교적 발행실적이 좋은 H사도 박완서씨의 수필집을 재판으로 내놓으려다 종이를 구할 수 없어 중단 상태에 있다면서 근본적인 종이수급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같은 종이파동은 결국 책값인상과 저질출판의 형태로 독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30%이상(심하면 1백%)의 웃돈을 주고 종이를 사게되면 어느 형태로든 부가경비를 뽑아야하고 저질종이라도 감지덕지 구할 때 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전문 학술도서릍 출판하는 일조각 한만연사장 (출협회장)은 종이부족이 전문도서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종이 부족사태를 걱정한다.
구하는 대로 종이를 쓰기 때문에 종이의 질이 일정하지 않고 사실상 질이 떨어져 어떤 중질지는 뒷면의 인쇄가 그대로 비쳐 출판인의 양심상 그대로 내놓기가 미안할 정도라고 출판업자들은 현재 종이의 질이 표시된 품목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결같이 얘기하고 있다. 70g짜리 중질지의 경우는 과거의 60g짜리와 마찬가지이고 유광·무광의 구별도 이제는 의미가 없다고 할 정도다.
이같은 종이사정은 근본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못따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매년 30%이상 늘어나는 출판량의 수요를 미리 예측하지 못해 시설투자를 안한데다 국제「펄프」가격의 40% 인상으로 채산성이 안맞는 인쇄용지의 생산을 제지공장에서 기피하는 탓이다.
한국제지공업연합회 양연호 과장도 제지업을 수익성이 없는 사업으로 보고 대부분의 공장들이 증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파동을 겪게 된 것 같다고 풀이하면서 당국에서도 현재 고시가격에 묶여있는 종이 값을 풀어 현실화함으로써 제지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사실상 제지업계는 중질지·백상지·「아트」지 등 인쇄용지보다는 수익성이 높고 수출효과가 큰「크라프트」지나 판지 등 고급지에 더 매달리는 실정이다. 그래도 지난해(11월 현재)인쇄용지 생산량은 22만1천t으로 77년의 18만7천t에 비해 31%가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앞으로의 종이수급사정을 낙관한다. 뒤늦게나마 각 공장이 증설에 힘을 쏟고있기 때문이다. 단 중간도매장의 매점매석과 대출판사의 사재기 등의 가수요 현상만 없으면 오히려 종이는 남아돌거라는 얘기다.
최근의 종이품귀현상도 2월초로 예정되는 가격 인상설에 편승한 공장측의 출고기피나 업자들의 농간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출협측은 지난달 출판문화발전을 위해 종이 공급을 원활하게 해달라는 건의서를 상공부 등 관계당국에 낸바 있으나 별 반응이 없다고 섭섭한 표정이다.
다른 부문에 비해 전근대적 영세성에 허덕이는 출판업계에 대한 당국의 지원은 종이 파동 같은 외부적 충격을 막아주는 일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라는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선진국에의 꿈은『종이 사용량이 그 나라 문화수준을 반영한다』는 의식에 철저할 매 비로소 한발 다가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방인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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