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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안개를낚다|최정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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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내1‥(깜짝 놀라 멱살을 놓으며) 아니, 우리가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 건가요?
사내2‥아니지요.형씨가 나의 멱살을 잡았을 뿐이요.
사내l‥내가 왜 형씨의 멱살을 잡았죠? 그것 참 이상하군. 확실히 술이라는건 사람을 이상하게 만든다니까.
여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 호호호‥웃기는 양반들이셔.
(사내1 무대를 배회한다. 손으로 뒤통수를 툭툭 치며 혼자 중얼거린다. 여자와 사내2 서로 마주본다. 여자 씽긋 웃는다. 사이, 고속도로에서 대형차량이 급정거하는 소리 들려온다. 이어서 차량이충돌하는 소리. 한번, 두번, 세번-. )
사내1‥죽었어요.
사내2‥죽었군요.
여자‥죽었다니까요. 아유,블쌍해라.
사내l‥누가 죽었을까요?
사내2‥누가 죽었지요?
여자··우리 알아맞히기 내기해요.많이 말한 사람이 이기기로요.
(사내l·2·여자, 잠시 생각한다.)
사내1‥이십년 무사고 모범운전사가 죽었어요.
사내2‥삼일전에 면허증 딴 스물 한살짜리 총각운전사가 죽었군요.
여자‥얼굴은 나보다 밉지만 마음씨는 좋은 안내양이 죽었다니까요.
(세 사람의 말소리 차츰 빨라진다.)
사내1‥아들 찾아가던 할아버지가 죽었어요.
사내2‥딸 찾아가던 할머니가 죽었군요.
여자‥그분들의 딸도 죽었다니까요.
사내l‥신혼여행에서 들아오던 병아리 부부가 죽었어오.
사내2‥중년 부부가 죽었군요.
여자‥젊은 한쌍이 죽었다니까요.
사내l‥소설가가 죽었어요.
사내2‥시인이 죽었군요.
여자‥화가가 죽었다니까요.
사내l‥의사,환자,간호원이 죽었어요.
사내2‥회장,사장,비서가 죽었군요.
여자‥은행원,회사원, 그 아내가 죽었다니까요.
사내l‥미스터 김이 죽었어요.
사내2‥이선생이 죽었군요.
여자‥미스 양이 죽었다니까요.
사내1‥죽었어요.
사내2‥죽었군요.
여자‥죽었다니까요.
사내l‥모두 다 죽었어요.
사내2‥한 사람도 남지 앉았군요.
여자‥다 죽었다니까요.
사내l‥누가 죽었어요?
사내2‥누가 죽었지요?
여자‥누가 죽었나요?
사내l‥우리가 죽었어요.
사내2‥우리가 죽었군요.
여자‥맞아요. 하나, 둘, 셋, 다 죽었다니까요.
(여자 사내2를 꼬집는다.)
사내2‥아얏!
사내1‥어? 살았어요.
사내2‥살았군요.
여자‥살았다니까요.
사내1‥누가 살았지요?
사내2‥주가 살았나요?
여자‥우리 알아맞히기 내기해요. 많이 말한 사람이 이기기로요.
(사내1.2.여자, 잠시 생각한다.)
사내1‥모범운전사가 살았어요.
사내2‥총각운전사가 살았군요.
여자‥안내양이 살았다니까요.
(세 사람의 말소리 차츰 빨라진다.)
사내1‥할아버지가 살았어요.
사내2‥할머니가 살았군요.
여자‥그분들의 딸도 살았다니까요.
사내1‥병아리부부가 살았어요.
사내2‥중년부부가 살았군요.
여자‥젊은 한쌍이 살았다니까요.
사내1‥소설가가 살았어요.
사내2‥시인이 살았군요.
여자‥화가가 살았다니까요.
사내l‥의사, 환자, 간호원이 살았어요.
사내2‥회장, 사장, 비서가 살았군요.
여자‥은행원, 회사원, 그 아내가 살았다니까요.
사내1‥미스터 김이 살았어요.
사내2‥이선생이 살았군요.
여자‥미스 양이 살았다니까요
사내l‥살았어요.
사내2‥살았군요.
여자‥살았다니까요.
사내l‥모두 다 살았어요.
사내2‥한 사랍도 죽지 않았군요.
여자‥다 살았다니까요.
사내1‥누나 살았어요?
사내2‥누가 샅았지요?
여자‥누가 살았나요?
사내l‥우리가 살았어요.
사내2‥우러가 살았군요.
여자‥맞아요. 하나, 둘, 셋, 다 살았다니까요.
사내1‥하하하.
사내2‥허허허.
여자‥호호호.
(사내1 갑자기 심각해진다.)
사내l·내 아내가 죽었소.
사내2‥(놀라서) 예?
여자‥ (놀라서) 네?
사내l‥놈팽이와의 동반여행에서 돌아오던 내 아내가 죽었소. 뇌진탕을 일으켜.
사내2‥안됐군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여자‥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댁에가 혼자 사는 남자라는 걸. 냄새가 나던 걸요.
사내1‥빗길이 미끄러운 아스팔트 위에서였소. 놈팽이 녀석이 오토바이를 과속으로 몰았던 거요.
여자‥좋으시다면 빨래같은 건 해드릴 수 있어요.
사내1‥사실 난 내 아내한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소. 열쇠를 맡긴 것밖에는.
여자‥밥도 지어드릴 수 있어요. 이래봬도 밥짓는 솜씨 하나는 일품이라구요. 원하신다면 잠자리도 같이….
사내2‥그게 좋겠군요. 아무래도 남자는 여자가 있어야 살맛 나는 것 아닙니까?
사내1‥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뭐 괜찮습니다. 나는 항시 밖에서 문을 잠그거든요. 그러면 안에서는 열수가 없지요.
(사이, 고속도로에서 순찰차의 소움이 들려온다. 세사람 잠시 멍한 상태-)
사내l‥이 안개는 걷히지 않을까요?
여자‥왜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요?
사내2‥글쎄요. 때가 되면 걷히겠지요.
사내1‥그 때가 언제지요?
여자‥그 때가 언제지요?
사내2‥그걸 내가 알수 있나요? 이 상태에선 낚시질도 되지 않겠는데요.
사내1‥낚시질?
여자‥낚시질이요?
사내1‥우리는 몇 마리의 붕어를 잡았지요?
사내2‥허탕을 쳤어요. 당신네들은 몰라도 나는 한 마리도 못잡았어요.
여자‥그래요. 붕어들이 왔다가 갔어요. 낚시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사내2‥원, 무엇이 보여야지. 이처럼 지독한 안개는 내평생 또 처음이오.
사내1‥이 안개는 걷히지 않을까요?
여자‥왜 안개가 안 걷히죠?
사내1‥그러니까 우리는 안개는 걷힐까 안 걷힐까 그것도 모르면서 낚시질을 했군요.
여자‥우습네요. 그것도 모르면서 낚시질을 하다니.
사내2‥글세 그렇다니까요. (고기바구니를 들어보인다.) 자, 이걸 보셔요. 이 텅빈 속을‥.
여자‥(사내2의 바구니를 들여다본다.) 깨끗하군요. 호호호.
사내1‥(정색을 하며) 나는 잡았어요. 바구니로 하나 가득.
사내2‥ (놀라서)잡았어요?
여자‥ (놀라서) 잡았어요?
사내l‥내 바구니를 보시겠어요?
(사내1, 자기 자리로 돌아와 고기바구니를 사내2와 여자에게 보여준다. 무대롤 빙빙 돈다.)
사내l‥보셔요. 가득 찼지 않아요? 당신들의 바구니는 텅비어 있지만 내 바구니는 가득 찼어요. 당신들의 눈은 안개속을 보지 못하지만 내 눈은 안개속에서 안개룰 낚았다니까요.자,보세요. 내 바구니에 가득찬 안개를…허허허…안개를 낚았다니까요. 허허허…난 안개를 낚았어요.
(사내l, 바구니를 빙빙 돌리다가 낚시대를챙기기 시작한다. 낚시대를 다 챙기고 미끼를 호수에 뿌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내2와 여자.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스쳐가는 소음 길게 계속되면서 서서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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