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승리의 서사시…장열했던 북극탐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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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극지 탐험대의 78년도 북극권 진출은 경험과 자료부족으로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시행착오를 여러번 범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목표지점 도달에 성공함으로써 오히려 보다 많은 교훈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면밀한 준비를 한다고는 했지만 현지 사정은 가 본 사람들끼리도 다를 정도여서 초행의 우리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55일간의 북「그린란드」 탐험기간 동안 가는 곳마다 교통불편으로 애를 태우며 「에스키모」들 조차도 두려워하는 여름의 만년 빙하위에 가까스로 올라서긴 했으나 도중 늪지대와 바위산 등 난「코스」에서 대원들이 부상 당한데다 뜻하지 않은 개 식량의 부족 등으로 탐험대는 날이 갈수록 절박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예상보다 엄청나게 떨어진 기온으로 무선 통신용 발전기가 얼어붙고 준비해간 식량마저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에스키모」와 함께 날고기를 씹으며 허기와 추위를 견디기도 했다.
해발 1천 5백m의 얼음 벌판 위에 설치된 「베이스·캠프」에서 발진기지인 「카낙」을 거쳐 「그린란드」∼서울을 잇는 8천km의 극권 통신은 단 한번의 전례도 없어 그 가능성을 알 수 없었던 모험이었다. 3주간의 국내 훈련만으로 실제 응용에 들어간 내륙항법도 확신 없이 대원 모두를 극지의 미아로 만들지도 모르는 위험을 각오한 채 시도된 것이었다.
하루 1백km씩의 강행군으로 4마리의 개가 죽고 10여 마리가 다친 것만으로 무모함의 대가를 치르고 더 큰 피해없이 북극권 진출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극지에 첫발을 디딘 우리로서는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더 가혹한 악조건의 자연이 기다리는 남극점 도달을 위한 여러 가지 장비 「테스트」나 극지 적응도 빼놓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개인·공동장비 1백 50여 가지, 식량 1백여 가지, 그밖에 현지에서 운반수단으로 사용한 개 썰매며 「스노·모빌」등은 대부분 탐험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에스키모」나 개 썰매가 없는 남극 대륙에서 주 운반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스노·모빌」의 활용은 기대이상의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조리나 열량 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 한국식의 식품, 강풍을 견뎌내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텐트」등 가장 기본적인 장비와 식량은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다 적합한 것이 고안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우리의 탐험활동에 절대적인 도움을 준 「에스키모」의 극지 생활에서도 배울 점은 얼마든지 있었다.
탐험대가 「그린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8월 초순의 늦여름이었으며 24시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8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짧은 가을과 함께 겨울이 닥쳐 「아이스·캡」에서는 안개와 강한 바람이 엇갈리고 동북쪽 북빙양으로부터 혹한이 몰려와 계절이 바뀔 때의 특유한 기상 악화가 끊임없이 대원들을 괴롭혔다.
기온이 약간 올라간 듯 싶으면 시야가 50m도 안 되는 짙은 안개가 깔려 진로를 찾을 수 없었고 안개가 걷히면 무서운 극지의 바람 「불리자드」가 추위를 몰고 와 영하 37도까지 내려가 행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귀로에서 안개로 길을 앓고 헤맬 때, 항법기재와 나침반·지도 등도 아무런 쓸모없이 눈보라에 가려진 태양처럼 빛을 잃었을 때 「에스키모」의 밝은 눈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또 한번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것이다.

<글 홍성호 기자>

<사진 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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