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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피난시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구서 피난짐을 푼 「신협」은 「키네마」극장을 중심으로 연극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공연한 연극들은 모두 과거에 공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던 연극들의 재공연이었다.
창작극도 없었을 뿐더러 신작을 공연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레퍼터리」는 『자오고』『마의태자』『목격자』『원술랑』『맹진사댁 경사』등 「신협」의 「달러·박스」로 꼽던 연극들이었다.
「신협」은 「문예중대」에 속해 있으면서 군의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군에서 극단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연극활동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군에서는 단원들에 대해 군인과 똑같은 주식과 부식을 공급해주었고 지방공연을 갈때면 장치·소도구등을 운반할 차량을 제공해 주었다.
「문예중대」엔 김동수란 대위가 중대장으로 파견되어 있었으며 단원들은 모두 일등병들이었다. 그러고 일등병들에겐 총 한자루씩이 배급되었다.
대구공연때나 지방공연때나 김동수대위는 극단을 위해 많은 협조를 해주었다. 「신협」이 국립극장과는 관계가 멀어진 이상 월급이 나올리가 없었으니 「신협」의 운영은 다시 배당제로 환원됐다.
피난지에서의 연극은 대성황이었다. 연극을 할때마다 극장은 발들여놓을 틈 없이 만원을 이루었다. 지금처럼 좌석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원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던 때라 극장에선 오는대로 관객을 받아 들였다.
연극은 대구에서 시작해서 부산·마산·진주·전주·광주등지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가는 곳마다 만원이라서 단원들에 대한 배당은 두둑했다.
젊은 단원들은 배당을 받으면 그 돈으로 목침을 만들어 배고 자곤 했다. 돈의 가치가 없었기도 했지만 그러나 배당은 꽤 풍성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협」단원들은 피난 속에서나마 생활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공연이 활발해지면서 그 나름대로 피난지에서 안주하게됐다.
이즈음 「신협」내부엔 젊은 연극인들이 주축이 된 「세븐·클럽」이란 단체가 생겨났다.
「세븐·클럽」의 「멤버」는 오사량·최무룡·장민호·심재열(효과)·김규대(연출)·조항·김한극(사업) 등이었다. 이들은 당시 나이가 비슷비슷한 젊은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서로 뜻이 맞아 몇 사람이 모인 친목단체였다. 그러나 이것이 차차 「섹트」적인 성격을 띤 압력단체의 구실을 하게됐다.
나는 처음 이들의 모임을 모르고 있었다. 「키네마」극장 옆엔 「은하수」란 다방이 있었는데, 단원들이 즐겨다니던 단골이었다.
하루는 다방엘 들렀더니 이런 얘기가 들려 나는 펄쩍 뛰었다. 『극단안에 또 하나의 다른 단체가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들의 모임을 반대했다.
더군다나 몇백명이 모인 집단도 아니고 기껏 20여명의 단원사이에 「섹트」적인 성격을 띤 모임이 생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극구 말렸다.
또 하나 곤란한 것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로 그 「클럽」에 끼지 못한 이들의 반발도 문제였다.
그러나 나의 말엔 아랑곳없이 그들은 자주 어울리면서 술을 마셨고 연극이야기를 나누면서 「세븐·클럽」은 하나의 공공연한 모임체가 됐다.
그러나 어떤 틀 안에 또 하나의 틀이 생긴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 이 「세븐·클럽」은 그 뒤에 몇 가지의 말썽을 빚기도 했다.
배당제를 도입한 「신협」엔 배당의 기준이 되는 등급이 있었다. 이 등급은 극단의 간부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다른 단원들은 관여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신협」의 간부들이란 김동원·이화삼·박상익·김선영, 그리고 필자등이었는데 이화삼·김선영이 납치당했고 박상익은 공군본부의 「창공구락부」란 단체에 소속, 「신협」을 떠나있어 당시의 「신협」「리더」로는 김동원·윤방일 그리고 필자등 3인뿐이었다.
배당등급에 따른 A급으로는 김동원·윤방일·박경주·이진순, 그리고 필자였다.
이진순은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나와 동인이었고 연출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신협」가입을 권유, 서울서 함께 피난을 왔었다.
「세븐·클럽」「멤버」들은 「신협」 자체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다만 당시 연극인들 가운데 젊은 「엘리트」들로 한창 연극에 대한 정열이 타오르던 때라 자기들 나름대로의 좋은 연극을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배당등급에 대해 그들은 조그마한 말썽을 일으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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