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중진 연설|10대 총선 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효상 (공화·대구 동대구)=언젠가 내가 대통령에게 사태를 표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대통령께서는 담배만 뻐꿈뻐꿈 피우고 천장만 한동안 쳐다보다가 「한솔 선생, 나는 사표 낼데도 없어요」라고 하셨다. 그 말씀하는 표정이 얼마나 고독해 보이는지, 더구나 육 여사도 돌아가신 후라 어떻게 쓸쓸해 보이는지 더 이상 사의를 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의를 내 마음속으로 철회했다.
대통령과 나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대통령이 공천을 준 것은 함께 일하자는 것이다. 내 건강을 염려하는 유권자가 있는 모양이나 건강은 매우 좋다.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 당으로서는 좋잖은 시기에 선거하게 됐다. 물가가 다락같이 올라가는 좋지 못한 때다. 이렇게된데 대해 할말이 없다.
내년부터는 정신 바짝 차리고 해 나가겠다. 제일 큰 문제가 안보 문제다. 제3땅굴·간첩 살인이 나오고 그 간첩을 아직 못 잡았다. 군사·경제력·국민총화 다한데 모아 똘똘 뭉쳐 국방해야 한다. 나는 대구 남산동에서 났다. 대구서 자랐고 결혼해 애도 낳고 늙어간다. 나이 72세이다. 대구가 날 버리지 않을 줄 안다. 나는 내 스스로를 잘 안다.
나는 정치와 종교 가운데 서서 가고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다. 정치와 종교 사이에 부조리가 있으면 해결토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지구당에 민원실을 설치하겠다.
▲이철승 (신민·전주-완주)=국회를 해산해 헌법을 고치고 국회법을 고쳤을 때 국회에 나가야할 것인가 아닌가 고민했다. 그러나 하나의 정권은 흥망 성쇠가 있으나 민족과 국가는 영원한 것이므로 참여 속에 개혁을 위해 출마했었다.
공화당은 3분의 1을 이미 따 놓았고 또 3분의 1을 먹어 절대 다수가 되게 돼 있다.
신민당은 10대 국회에서 사법권의 독립·학원 자유의 보장·인권의 신장 등을 위해 한층 투쟁하고 재적 4분의1만으로 국회를 열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세금으로 지은 의사당이 관광 명소로 전락한 잘못을 바로 잡겠다.
예비군의 근무 연한을 35세에서 30세로 내리고 민방위대 근무 연한도 50세에서 40세로 내리겠다.
신민당은 부가가치세제를 없애자는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영국에서도 몇 10년 국민에게 훈련시켜 실시하고 일본에서는 물가 영향 때문에 시행을 못하고 있잖은가.
1천「달러」 소득이라는데 여러분 모두 1년에 50만∼60만원 소득이 있습니까. 모두 재벌의 얘기고 그림의 떡이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1백억불 수출이 무슨 소용인가. 이래도 장·차관 가운데 책임지고 물러난 사람하나 없다.
야당은 지방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공화당이 1백만원 들여 다리를 놓는다면 그중 20만원 빼돌리는가 감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모두가 국민의 예산이다. 신민당은 민주 회복과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의회 정치가 마비됐어도 정당이 살아 있으면 기사 회생을 할 수 있다. 3분의 1만 가지면 언제나 국회를 열 수 있다. 눈·비가 오더라도 많은 우리 동료들을 전국적으로 뽑아주면 야경대의 역할을 하겠다.
▲정일권 (공화·속초-인제-양양)=우리는 군수 산업을 크게 발전시켜 장갑차를 「유럽」에 수출할 정도로 막강한 전투력을 갖추는 태세가 됐다.
우리가 개발한 「미사일」이 3백km 밖 목표물에 명중하는 것을 TV를 통해 보지 않았느냐. 김일성이 잠 잘 때 조준하면 그대로 명중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이룩했다.
이 고장 발전이 좀 늦었으나 지난 6년 공화당 집권하에서 많이 해결돼 가고 있다.
인제에는 전국에서도 유수한 종합 병원이 세워졌고 군청 소재지로는 전국 최초로 전화를 자동화했으며 학교·교량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아직 이곳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나는 1백25명의 이 고장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줘왔고 이를 내년부터는 1백25명으로 늘리겠다.
내설악을 차차 개발, 양양과 인제간의 한계령 도로가 내년 3월에는 고속화 도로로 착공된다.
명년에 동해안 속초∼고성간의 7번 국도와 양양∼인제간의 도로가 착공케 된 것은 커다란 특혜다. 또 나는 이 고장에 축산 장려를 하고자 한다, 곳곳마다 목장을 만들어 장려하고 농사도 기계화하자. 할아버지·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손으로 통일을 맞아 보자. 그 기반을 이 고장에서 이룩해야 한다.
▲김종필 (공화·부여-서천-보령)=5·16 혁명 후 우리 나라는 근대화·현대와·민족 중흥의 위대한 발정을 해왔으며 그동안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을 나라의 소명이라 생각하고 충실히 수정해왔다.
많은 말도 들었으나 겨레에 봉사하는 것만이 살고 있는 보람이고 뜻이며 무슨 일이건 최선을 다해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우리 나라가 번영과 평화를 이루도록 애쓰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륜을 뒷받침하고 보필하는 것이며 그것이 나의 보람이다.
정계에 들어와 어려운 일, 복잡한 일, 우여곡절, 부심을 겪었으나 항상 국민 여러분의 인내와. 노력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고마운 백성을 위해 평생 노력하고 싶다.
아직도 더 잘 살 수 있다. 시간을 갖고 노력하자. 일본이나 우리나 국가 영위 「패턴」이 같다. 부존 자원 없이 수출 입국해야 한다. 일본이 1백억「달러」를 수출한게 꼭 10년 전이다. 지금의 일본 국민 소득은 1만「달러」다. 앞으로 10년이면 5백억∼8백억「달러」수출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10년 후엔 김일성이 대한 민국의 어디를 찔러도 혼이 나게 해줄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는 정치 안정·사회 안정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세계적 강국 대열에 우리 나라를 올려놓도록 뒷받침 해 줘야한다.
▲신도환 (신민·대구동-남구)=참된 신도환의 모습을 정계에 제기시켜준 동-남구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나를 재기시켜 준 여러분이 앞으로 제1야당을 이끌어 갈 신도환으로 만들어주길 부탁한다.
긴급조치는 긴급 사태가 났을 때 선포하는 것이다. 4년 전에 어떤 일이 긴급했는지 모르지만 국회에서 나는 총리와 장관에게 물어봤다. 『4년 동안이나 뭣이 그리 긴급하냐, 4년간이나 모르는 것은 결국 정부가 무능한 탓 아니냐』고 했다.
나는 산 증인이다. 자유당 멸망 후 8년여를 감옥에서 보낸 산증인이다. 총리에게 김형욱 사건과 같은 일이 없도록 충고한다고 말했다.
국회 문공위에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또 『제적 대학생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도 복학할 수 없게 돼 있다. 재생의 기회가 없다. 구제하라』고 했다.
신도환이니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자유당 때 35세로 2백40만의 반공 청년 단장을 했지만 2백40만이 아니라 2천4백만이라도 소용이 없다. 나는 신민당은 국민편이고 공화당은 정부편이라고 생각한다. 배추 1포기에 2천5백원 하더니 이제 10원, 15원 한다. 경제 장관을 몰아내자고 했으나 손드는 것은 신민당이고 무소속과 공화당은 손을 들지 않는다.
부가세도 신민당이 폐지안을 냈지만 개인적으로 납득한 공화당 사람들까지 그냥 두자는데 손들었다.
나는 「사꾸라」가 뭔지 모른다. 공산과 자유 진영간에도 대화를 하는데 공화·신민 의원 간에도 대화하고 의논할 수 있는 일 아니냐. 나는 개인적으로 가까와도 공적으로 할말은 다한다. 각 장관들은 신도환의 발언에 가장 가슴이 썰렁하다는 말을 한다. 문교장관도 내 동창이지만 가짜 교사 자격증 문제가 나왔을 때 사표 내라고 했다. 신민당에 표를 더 많이 던졌을 때 물가고 세금이고 다 반성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의 권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