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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어린이와 여성들의 수난 그쳤으면|밝은 웃음·건전한 「모럴」이 없는 곳에 내일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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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문턱에 섰다. 지난 1년간 우리 주변에서는 너무도 많은 놀랍고 기막히고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지만 정신세계의 쇠퇴와 물질에 대한 욕심만이 팽배한 사회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성「스캔들」·「아파트」부정 분양사건·철없는 어린이 유괴 및 살인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수단방법을 가라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결국은 정신의 쇠퇴를 초래한 것 같다. 힘이 있고 부유한 사람은 약자를 돌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약자중에서도 더욱더 무시되고 있는 계층이 여자와 어린이들이다.
인간보다 물질이 중요한 세태에서는 생산성이 없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은 선망을 잃고 자꾸만 왜소해진다. 그래서 중년여성들은 물질의 동요를 찾아 덩달아 뛰고 젊은 여자애들은 돈과 쾌락을 위해 너무도 쉽게 유혹에 넘어간다. 남자들은 돈을 듬뿍 주기만 하면 모든 죄의식·도덕적 책임도 전가할 수 있다고 믿어버린다.
몇몇 여고생들과 50대 남자들의 성「스캔들」이 좋은 예다. 물질이 정신을 압도한 세태는 인간을 인간이도록 버텨주는 인격·체면·권위를 빼앗아 가버린 것 같다.
인간을 목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현실이 애처롭다.
지난 한해는 바로 그러한 생각들의 정점을 이룬 시기인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은 아이를 유괴해서「트렁크」에 처박아 두고 다니다가 잡혔고, 돌로 쳐죽이면서 「다이어」반지를 훔쳐 달아났다. 번대기를 농약부대에 담아 날라서 수많은 가난한 어린이들을 죽이고 울렸다. 어린이를 죽이는 방법도 끔찍해졌다. 이러한 인명경시풍조, 어린이에 대한 푸대접과 학대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물질문명과 그에 부응하는 어른들의 욕심·피곤함·시달림 등에 그들은 희생된 것이다.
그러면 어린이들을 죽인 사람들에게만 책임이 있을까. 그들만 나쁜 사람들일까. 어떤 면에서는 그들 역시 약자이고 힘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1백25억「달러」의 수출 실적을 자랑하고 그 경영자들을 칭송한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공장에 줄지어 앉아 끊임없이 하루종일 기계 부품을 끼우고 보세옷에 팔소매를 다는 소녀와 중년여자들, 엄마를 공장에 뺏기고 세살짜리를 돌봐야했던 6살짜리의 아픔과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과 있는 사람, 부리는 사람과 부림을 받는 사람들간의 메울 수 없는 깊은 단절이 오늘날 우리의 슬픈 현실을 자초한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기반이 없어 일어서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거기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있다. 「유엔」은 79년을 「세계어린이의 해」로 정했다. 얼마나 수많은 어린이들이 세계도처에서 정신적으로 학대받고 물질적으로 궁핍한 가운데 살고있으면 죄책감에 사로잡힌 어른들이 「어린이의 해」를 정하는 것일까. 3백65일중의 하루, 무한한 역사상의 한해를 몽땅 어린이에게 「서비스」한다고 어른들의 죄책감을 덜어버릴 수 있을까? 새해 「어린이의 해」를 맞아서는 나날이 모두 어린이날이 되어 어린이가 가장 귀한 인격체로 존중받고 구김살 없이 자랄 수 있는 풍토가 되도록 우리 어른들은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이 있고, 건전한 「모럴」이 숨쉬고 있는 곳에서만이 빛나는 내일이 약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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