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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형 사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 「아파트」 단지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갖가지 사건들은 새로운 주거 「패턴」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아파트」에 그나름의 반 생활적 요인이 도사리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경종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 같다.
「아파트」 주변에서 빚어지고 있는 「가스」 폭발·노인 자살·강도 살인 사건·「엘리베이터」 고장, 그리고 어린이 동사 등의 충격적인 일들이 꼭 「아파트」란 특정 지역에 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들 사고의 구체적 원인을 하나하나 미시적으로 관찰해 볼 때 그것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의 집적이라기보다는 「아파트」 특유의 단절된 집단 주거 형태와 개연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향남 「아파트」에서 발생한 민우군 살해 강도 사건이나 수정 「아파트」 지희 양 참사 사건만 해도 그렇다.
두 어린이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아간 범인들은 대부분 한낮에는 어른들이 집을 비우는 입주자들의 관행과 또 범행을 저질러도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다는 폐쇄적 구조의 취약점을 처음부터 노렸다. 범행의 시간이나 대상의 선택부터가 일반 주택가의 경우와 다른 것이다.
「아파트」와 같은 주거 형태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생활에 대한 새로운 위하 요인을 수반하고 이에 대응하는 의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아파트」를 짓는 대부분의 건설업자와 거기서 살고 있는 입주자들 까지도 「아파트」를 생활의 근거지로 여기기보다는 사고 팔기 위한 한갖 「상품」으로만 취급한 나머지 재난에 대한 방호나 주거 환경의 조성이란 본질적 측면은 소홀히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때문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조차 공원·노인 시설·도서관·공민관·오락 시설 등 「코뮤니티」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마저 갖추지 않은데다 속임수 날림 시공으로 부실 투성이가 돼 있는 실정이다.
「아파트」에서 「가스」 폭발과 「엘리베이터」 고장 같은 사고가 빈발하고 갈곳 없는 노인이 소외감을 못 이겨 자살까지 하는 사태가 빚어지는 것도 이처럼 황폐한 「아파트」의 주거 환경과 깊은 연관을 갖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와 함께 더욱 중요한 것은 「아파트」 주민의 지나친 자기 중심적 폐쇄성에 대한 반성이다.
「아파트」의 「베란다」 밑에서 집 잃은 어린이가 영하의 추위 속에서 신음하다 죽어가도 주민들은 아무도 그 울음소리를 찾아 나서지 않을 만큼 모두가 철저히 비정했다.
수정 「아파트」의 지희 양이 참변을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투성이의 딸을 안고 뛰어나와 도와 달라며 몸부림치는 어머니를 보고도 이웃들은 장승처럼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아파트」 단지는 이질적 개인들의 집단으로 구성 돼 자칫 폐쇄적이고 이기적 생활 태도를 갖기 쉽다.
그렇다 해도 재난으로 절박한 위험에 처한 이웃을 외면할 정도라면 이웃과 더불어 살려는 의사조차 갖지 않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아파트」도 단독 주택이나 마찬가지로 인간 생활의 근거인 동시에 지역 사회 구성의 단위임에 틀림없다. 「아파트」의 어느 한집에서 불이 나면 그 피해가 불을 낸 한 가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파트」에 사는 모든 가구에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자기 방위를 위해서도 「아파트」 주민들은 「나」 아닌 「우리들 의식」을 키워나가야 하겠다. 남이야 어찌됐든 열쇠 하나로 나의 생활만 지키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는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도 이웃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총국에는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파트」와 같은 공유 재산의 유지 관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 생활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모럴」의 모색과 그것의 생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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