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같은 위험시설 3D도면 작성 의무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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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연초에 부산에 있는 한국선급을 찾아 국내 취항 중인 여객선에 대한 선체 정보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입체도면이 있으면 재해 예방, 보수 유지에 효율적이라고 설득했지만 ‘그런 게 왜 필요하냐’며 시큰둥해하더군요.”

 주요 건물·선박·문화재 등을 대상으로 입체 정보를 만드는 다인그룹의 백순엽(48·사진) 대표는 한국선급을 방문해 문전박대당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백 대표는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정확한 선체 정보가 있었다면 구조작업 때 상당한 효과를 봤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다인그룹은 3D 기술을 바탕으로 대상체에 대한 정밀 데이터를 제작하는 기업이다. 1985년 창업해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지 석탑(국보 122호) 복원, 개성 만월대 발굴 등 문화재 복구사업에 주력해 왔다. 2010년 이후 산업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백 대표는 보람보다는 황당한 경험을 더 많이 했다. 기업의 안일한 안전 투자 인식 때문이다. “최근 전남 여수에 있는 화학공장을 찾았다가 기름종이에 손으로 그린 설계도면을 30년 넘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세계 1~2위 생산량을 자랑하는 국내 플랜트의 현주소입니다. 지난 30~40년간 숱한 신증설과 유지·보수를 거치면서 국내 공장은 ‘화약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안전 관리는 낙제 수준이지요.”

 지금까지 다인그룹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스카나코리아·오드펠터미널(이상 노르웨이) 등 외국계 기업에서 수주한 것이 대부분이다. 백 대표는 “사업도 사업이지만 아직까지 국내 기업은 안전을 투자보다는 비용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최소한 원자력발전소 같은 위험시설은 3D 도면 구축을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언했다.

 기술력은 어떨까? 이 회사는 연초 호주계 자원개발 업체인 인펙스가 발주한 삼성중공업 드릴십에 대한 정보 구축사업을 따냈다. 백 대표는 “당시 입찰에 참여했던 미국 기업보다 기술 점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자랑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공사 초기 단계에서부터 디지털로 정보 교류가 돼 건조는 물론 향후 유지 관리에서도 크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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