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현금공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해 8월 출마를 선언한 K씨는 2억원을 이미 썼고 앞으로 2억원을 더 쓰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흥-보성의 한 출마준비자 주장),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돈 없는 내가 이럭저럭 1억원을 쓴 것을 알고 나도 놀랐다』(군산-옥구-구리-익산의 한 무소속 출마준비자의 말).
선거에는 돈이 들게 마련이고 10대 총선에서도 억대는 써야한다는 말들이 정설화 돼있다.
9대 때는 최하 5백만원, 최고 1억원대를 쓰고 당선된 사람이 있다는 말들을 했으나 10대 총선에서는 일단 출마를 한 이상 「낙선을 기다리지 않는 한」최하 5천만원이 기본경비라고들 말하고 있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억대선.
물가·「인플레」 등을 감안하면 5백만원은 지금의 1천5백만원, 8, 9천만원이었으면 지금은 2억원이 넘는 것으로 비교평가들을 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 실시된 「통대」의원 선거가 물량 공세로 끝나 의원선거에서도 자금단위가 훨씬 상승할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67년이나 71년 총선 때 나온 「3당2락」이니 「4당3락」이니 하는 말은 천만원을 단위로 했으나 이번 10대 총선에는 단위가 하나 올라 억대로 한 「2당1락」 또는 「3당2락」의 엄청난 신판「돈의 정리」가 세워질 것 같다고 점들을 치고있다.
경북 영양-영주-봉화의 어느 출마준비자는 지난 7월에 조직 재정비에 착수, 군·면·이·자연부락까지 모두 1천4백명의 핵심활동 요원을 조직하는 데만 1천5백만원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8월에 「당원확대」과업을 시달, 시험「케이스」로 한차례 가동 시켜본 결과 「최소의 경비」원칙 아래 들어간 돈이 1천5백여만원.
선거일이 공고된 후에 쓸 돈을 빼놓고라도 유권자 약 17만명에 투표소는 3백여 개소여서 투표소당 2명씩 6백명을 배치해야하므로 이들에게 일당 1만원을 준다해도 투표당일 6백만∼1천만원의 필수비용이 들어간다는 것.
『선거운동기간 18일 동안 2천만원은 있으나 마나할 정도의 기본비용이 될 것이고 상대방 후보가 조금만 돌진해 오면 1억원은 보통일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게 그의 계산이다.
3개 군에 유권자 17만명은 「소선거구」에 지나지 않는다. 4, 5개 시·군에 유권자도 30만∼40만명이나 되는 선거구도 많은 실정이고 보면 선거자금도 인구와 지역에 따라 비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법정선거비용은 선거법에 규정돼있고 이 법정비용 외의 초과지출로 후보자의 선거사무장이 징역 또는 금고의 형을 받게된 때에는 당해 후보자가 당선무효가 되도록 돼있긴 하다. 그러나 법정 선거비는 후보자들에게 「새발의 피」도 못되는 실정이다.
9대 선거 때 서울시 선관위가 공시한 시내 각 지구의 경우를 보면 선거사무원 수당, 후보자경비, 우편 전신료, 자동차 임차료등 1지구당 평균 2백30여만원이고 최고래야 종로-중구의 3백50만원. 77년 6월에 실시된 종로∼중구 보선에서의 법정비용은 9백여만원. 이 비례를 따른다면 이번 총선에서의 법정경비도 1천5백만원 내외에 불과하다.
이 돈은 물론 선거운동기간 18일간의 「기본선거비용」이다.
다만 비용 이외에 정당후보자는 당원활동·정당활동을 명목으로 「당원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돈을 줄 수는 있게 돼있다.
출마자치고 법정선거비용만을 쓰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으며 정당후보자는 정당후보자대로, 무소속후보자는 또 그 나름대로 온갖 탈법, 세법과 각종 「루트」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은 공지된 사실이다.
법정선거비용에 관해 어느 의원은 『선관위사람들은 소꿉장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인가. 세상물정에 어두워도 장님인들 이것이 선거비용이라고 계산해 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대체 산출근거가 무엇이었을까』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경비를 제한, 타락선거를 규제하려는 법의 실효성마저 없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실 9대 선거이후 선거비용의 초과지출혐의로 선거사무장이 형을 받음으로써 당선이 무효 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또 법정경비만 쓴 사람도 아무도 없다고들 말하고있다.
여야의원들이 분석하는 탈법적 현금「루트」를 보면 대체로 6개다.
①공조직=당조직·당원을 통한선.
②사조직=입당. 당적을 가질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통한 배금. 각종 단체의 장·지도급 지역사회인사·동창 등등.
③후보자와 직접 관련되는 비공식집단=동갑계, 동창모임, 단순한 계모임(부인친구 등), 친목모임, 상포계(경조사 공제모임) 경로당 등등.
④후보자와 직접 관련이 없는 비공식모임=계 등 비공식집단에 널리 관련이 있는 당원을 2, 3선 건너서 후보자가 직접 현금을 전한 것이 되지 않게 하는 수법.
⑤불특정 집단에 대한 간접투입=산업시찰단, 관광모임 등.
⑥순 후보자 개별접촉=결혼식·장례식 등의 부모형제·상주 등에게 베푸는 호의와 기타요인에게 주는 돈, 이처럼 각종 「루트」로 흘러가는 『현금이 가는 곳에 마음이 생기고 마음 있는 곳에 표 있다』는 것이 선거를 치러본 선거전문가들의 말이다.
현금공세의 주요 금기사항을 들어보면.
▲차별대우를 철저히 배제하고 차별이 있었을 때는 극히 주의하라 ▲노출의 기미가 보이면 즉시 훨씬 고액으로 화근을 뽑으라 ▲돈이 많다는 소문을 내지 말라. 항상 죽는시늉을 하라 ▲이름이 박힌 봉투등 증거인멸에 철저를 기하라 ▲후보자와 절대로 직접 관련시키지 말라. 그렇다면 후보자들은 어떻게 돈을 마련하는가. 야당의 어느 당료는 9대 선거가 끝난뒤『야당생활도 그만 해야겠다』며 2년쯤 당주변에서 사라졌다.
그는 그때부터 부동산에 손을 대 집장사를 했고 작년엔 한 목을 크게 잡아 수억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더니 10대 공천에서 거뜬히 승자가 됐다.
서울 모선거구에서는 전 의원 Y씨가 증권으로 3억대 돈을 벌어 신민당 공천전에 뛰어들어 끝까지 견디다 떨어져 나간 예가 있다.
선거자금 조달은 「부동산」·증권 같은 자력조달도 있으나 ▲부모의 유산 ▲친척·친구 등의 지원 ▲당의 공식지원 ▲현역의원의 경우 음성적인 이해관계자로부터의 이권교류에 따른 사례 ▲부인의 조력 등등 타력의존이 대부분으로 돼있다.
공화당은 9대 선거 때 1천만원대의 당지원을 했으나 이번 총선에선 『4천만원 지원 받기가 힘들 것 같다』고 울상들이다. 야당의 경우는 당공식 지원은 기탁금도 안 되는 2백만원 정도가 정치자금 배분 후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밖에 계파「보스」들의 「케이스·바이·케이스」지원이 있게될 전망.
야당 의원들은 주로 『5천만원만 쓰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개인에 따라서는 억대를 쓸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공화당측이 입당원서를 받고 2만원, 3만원씩 돈을 돌리고 있다』(이철승 신민당대표 주장) 『선거구내의 유력 인사부인들을 모아 1인당 5, 6만원의 경비를 들여 호화판 제주도관광 여행을 수 차례 보낸 후보가 있다』(충북 제천-단양지구의 어느 출마희망자) 『통·반장이 공화당 의정 보고회에 사람을 나오라고 독려하고 나오면 3천원씩을 주고 있다』(서울 관악 K씨 주장).
선거공고 일이 다가오자 도처에서 현금공세의 헐뜯는 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으나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위인지 진부를 가리기는 어렵다.
줄잡아 3백80여명의 후보들이 4백억원 이상의 선거자금을 뿌릴 것이라는 추측도 있어 선거「인플레」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정경비를 현실화하는 대신 이를 위반했을 때는 철저한 의법 처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다수 견해다. <노재성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