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리트·미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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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친애하는 여대생 여러분. 그대들이 시집을 가면 반드시 억지로라도 시부모를 내 집에 모셔다가 함께 살도록 힘쓰시오. 시부모가 없으면 친부모라도!』
인류학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미국의「마거리트·미드」여사는 바로 10년 전 서울에서 우리 나라 여대생들을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여대생들은 하나의 익살로 받아들였지만「미드」여사는 이때 웃지 않았다.
그것은 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중요한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과거가 없는 현재만을 배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오늘날 친부모의 구실을 대항하는 TV도 그는『믿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그는 반세기전인 1920년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원시사회에 뛰어들어 그곳에서 문화인류학적 자료들을 수집했었다. 그때 나이 불과 24세. 「뉴기니」·「발리」·남태평양 등지에서 그의 연구생활은 계속되었다. 한때는 원시부락의 추장과 동거까지 했었다.
『「사모아」섬에서 자라는 소녀』『「뉴기니」어린이들의 성장과정』『3개 원시사회에서의 남녀기질』등은 이것을 바탕으로 씌어진 그의 대표적인 저서들이다. 이 전문적인 학술서들은 한때「베스트셀러」로 기록할 만큼 대중적 인기를 모았었다.
「미드」여사는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회 문화적 요인이 인격형성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를 집요하게 추구했었다.
결국 그는 개인의 인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소질에 의해서 미리 결정되기보다는 그 사회의 제도화한 가치관·양육방법 등 후천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신념에 이르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녀의 차이도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자녀교육을 어머니 아닌 아버지가 맡는다면 오늘과 같은 남녀의 차이는 뒤바뀌게 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물론 어느 편이 더 좋은가는 나중의 문제이며, 그런 사실을 알아낸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학문적 성과는 평가할 만하다.
만년에「미드」여사는 미국의 여성지「레드·북」지와 장기계약으로 시평을 맡았었다. 때로는 인생상담에도 응했다. 그는 평생을 통해 3번 결혼, 3번 이혼했다.
미국의 여성들은 그런 사실을 놓고 자기 사생활도 그렇거늘 남의 가정생활에 무슨 충고를 줄 수 있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미드」여사는 그 때 마다 이런 회답을 보냈다.
『남성과 여성은 여성에 상반되는 남성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관계의 성립이 필요하다』고.
범인의 귀엔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아무든 그는 미국여성의 존경을 받았었다. 그의 부음을 들으며 더구나 오랫동안 암과의 투병생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금 그를 우러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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