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삿갓의 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1807년 양주에서 출생.
1863년 무등산기슭 동복의 어느 양반집 사랑방에서 과객으로 죽음.
그사이 남긴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수많은 시와 일화뿐. 김삿갓, 본명 김병연의 일생이다.
새도 짐승도 제집이 있는데 /나는 한평생 혼자서 쓸쓸히 떠돌았네. /미투리 대지팡이로 천리길을 걸었고, /구름따라 온갖 곳이 집이었다. /사람을 탓하랴 하늘을 원망하랴/ 흘러간 세월 속에 내 마음만 아플 쁜인데….
김삿갓은 만석꾼의 아들로 22세때 장원급제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약속된 영화의 길을 버려야 했다.
역적으로 몰린 자기 조부에 대한 욕을 읊고 장원이된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당초의 동기야 어떻든, 김삿갓에게는 온전히 벼슬을 할 길은 없었다. 너무 성품이 곧았다고 할까.
그가 한평생 쓰고 다닌 삿갓이 이를 상미 해 주고 있다. 삿갓을 쓰면 보기 싫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또 남에게 보이기 싫은 자기 얼굴도 가려 준다.
삿갓은 비·바람을 가려 주는데도 좋았다. 더우기 상중에 흔히 쓰는 삿갓이 세상을 등져야 하는 불효자로 여긴 그에게는 안성마춤이었다.
그의 시에는 따뜻한 「유머」 와 함께 독한 풍자며, 해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가슴을 묘하게 뒤흔들어 놓고 따끔하게 찌르는 것이다. 나그네 길가에 흘러버리듯 써내던 그의 시들이 용케 남아 있는 것은 이런 때문이었다.
그의 시중에 이런게 있다.
이십수하삼십객
사십촌중오십식
인간개유칠십사
불여귀차삼십식.
스무나무 아래의 서러운 나그네에게 망할(사십)놈의 마을에서는 쉰밥(오십식)밖에 안 준다. 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일(칠십사)이 있겠는가. 차라리 내 집에 가서 설은밥 (삼십식) 을 먹느니만 못하구나.
그는 한평생을 두고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세상 만사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뜬세상 사람들은 헛되이 서두른다』 (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 는 뼈저린 어록에서 나온 처세였다.
병들어 시름하다 끝내 눈을 감은 그의 마지막 말은 『저 등잔불을 꺼 주시오』하는 것이었다. 「괴테」는 임종 때 『좀더 빛을』 하는 말을 남겼다. 너무나도 대조가 된다고 할까.
아무리 삿갓을 쓰고도 그는 너무도 못 볼 것, 보기 싫은 것들을 많이 보아 왔다. 결국 둥불을 완전히 껴야 눈이 감겨진 모양이다.
어제 광주 무등산 기슭에 김삿갓 시비가 세워졌다. 이 앞을 오가는 오늘의 나그네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꽤나 많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