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종횡|성병욱 <본사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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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불신"이 낳은 "신용"
미국은 소득이 높으니까 생활비도 비싸리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선진국 가운데서는 가강 물가가 싼 편이다.
우리나라 중류층 쓰는 물품치고 미국에서 더 비싼게 거의 없을 정도다. 우리의 주식인 쌀을 비롯해 식료품· 의복· 생활용구가 대개 모두 그렇다.
수입이 철저히 개방적이어서 전세계의 싼 물품이 죄다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계수입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데 물가는 이렇게 싸니 생활의 질이 높을 수밖에-.
GNP는 높아도 물가가 비싸 생활의 질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숫자상으로 GNP가 높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물가가 안정돼 생활의 질과 수준을 높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치 않을 수 없었다.
다만 미국에서는 주택의 월부금, 「아파트」의 월세, 자동차의 월부금 및 유지비등 우리 일반 가정과는 거의 인연이 없는 고정 지출이 많기 때문에 전반적인 지출이 훨씬 더 많긴 하다.
미국에서는 가계지출의 대부분이 현금이 아니라 은행등 신용기구를 통해 결제된다. 현금을 사용하는 경우란「택시」값·지하철「토큰」대·주차료 정도이고 그 밖의 모든 거래는「크레디·카드」나 수표가 사용된다. 음식점의 「팁」까지 「크레디트·카드」로 계산해 줄 정도니까.
은행에 들어가는 주택과 자동차 월부금·각종 청구서나 고지서에 의해 지불되는 공과금·「아파트」 월세·구독료·「크레디트·카드」 결제 등은 우편으로 수표를 보내고 항공료·「호텔」·식당·주유·「쇼핑」등에는 「크레디트·카드」를 이용한다.
가장 보편적인 「크레디트·카드」로는 「아메리카」은행(BOA) 이 중심이 돼 발행하는 「비자」 와 「마스더·차치」, 그리고 세계적인 신용판매회사인「아메리컨·익스프레스」사가 월25 「달러」 의 회비를 받고 발행하는 동명의「카드」가 있다.
이 「크레디트·카드」면 개별적으로 「크레디트·카드」를 발행하는 백화점 「체인」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소에서 현금처럼 통한다.
백화점같은 경우만은 「크레디트·카드」의 수수료 부담 때문에 개별적인「크레디트·카드」를 발행하는 수가 많다.
때문에 「크레디트·카드」만도 「비자」 와 「마스터· 차지」 나 「아메리컨·익스프레스」등 보편적인 것을 포함해 10∼20개를 지니고 다닌다.
신용제도가 어찌나 철저한지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이 본국 습관대로 현금거래만 하다가는 필요한 거래 실적을 쌓지 못해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거나 보험에 가입할 때 매우 애를 먹게 된다는 것이다.
파는 측에서도 현금거래보다는 신용거래를 더 달가와 할 뿐 아니라 야간에 영업을 하는 주유소에선 현금거래를 거절하는 경우조차 없지 않다.
현금을 보관·취급하는데서 오는 번거로움에 더해 강도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도난위험도 신용제도가 이렇게 발달하게 된 이유의 하나라는 얘기다.
사실 미국의 대도시에선 강도·강간·살인같은 강력 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뉴욕」 「맨해턴」 의 「할렘」 지구와 남부「브롱즈」같은 흑인 및 「푸에르토리코」인의 밀집 주거지역에선 대낮에도 강력사건이 빈발한다.
특히 여행자가 길을 잘못들어 발을 들여놓기라도 했다가는 가진 것을 죄다 털리기가 십상이다. 얼마전 교포 여학생이 지하철에서 잘못 내려 「할렘」에 들어갔다가 욕을 본 사건은 교포들간에 경종이 되고 있다.
「맨해턴」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뻗쳐 있는「센트럴」대공원도 해 만지면 인적이 사라지고 창문을 완전히 밀폐한 자동차만이 간혹 지나다닐 뿐이다. 「뉴욕」의 경우는 범죄뿐만 아니라 교통질서도 엉망이다.
「맨해턴」의 길은 대개가 일방통행인데 신호에 아랑곳없이 자동차와 행인이 다닌다. 「택시」가 길 한복판에서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것쯤은 보통이다.
서울의 교통질서가 나쁘다지만 적어도 「뉴욕」 보다는 훨씬 윗길이다.
살기 좋은 나라로서 밝은 면이 두드러지는 만큼 어두운 면의 심도도 깊은 것일까.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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