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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탄소차협력금, 돈 낼 사람에겐 물어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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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이상한 공청회였다. 9일 열린 저탄소차협력금 공청회 말이다. 으레 공청회의 논쟁 구도는 정부 대 이해관계자다. 그런데 이 공청회는 이견을 좁히지 못한 정부와 정부가 싸웠다. 토론자 명단에는 공청회 단골인 소비자단체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은 차에는 부담금을 물리고, 적은 차에는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쌍용차 코란도C를 사면 75만원을 더 내야 하고, 도요타 프리우스를 사면 200만원을 보조받는 식이다.

 제도를 추진하는 쪽에선 볼멘소리를 한다. “2015년부터 시행하기로 한 것은 이미 2년 전에 정해진 것인데 왜 이제 이러냐”고. 그 답은 소비자가 쏙 빠져 있는 9일 공청회가 보여준다. 정작 부담금을 낼 사람한테 제대로 안 물어봤기 때문에 시행이 임박해서야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선 이름부터 틀렸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본질적으로 탄소세인데 왜 이름을 협력금이라고 붙였느냐”고 힐난했다. 새로운 제도, 특히 국민 주머니와 관련된 제도는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이름은 그 결정체다. ‘저탄소차협력금’이란 말을 듣고 이게 어떤 제도인지 알 수 있는 소비자는 얼마나 될까. 지금은 전자제품 하나를 만들어도 설명서를 보지 않고 버튼 기능을 알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게 기본이 된 시대다. 보조금을 받는 사람이 있으니 탄소세는 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 쓰는 ‘보너스 맬러스(Bonus-Malus)’ 같은 유의 명칭이 타당하다. 그저 ‘친환경 정책’이라고 할 게 아니라 부담금과 보조금이 함께 있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돈을 걷는 방식도 떳떳하지 못하다. 사실상 준조세인데, 이 돈은 자동차 회사가 소비자에게 걷어서 정부에 전달한다. 제도의 효과를 봐서 매년 부담금·보조금 구간을 바꾸겠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공급자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는 매년 부담금 변동이 어떻게 될지를 예상해가면서 차를 살 시점을 저울질해야 한다. 차가 로또인가.

 총론적으로 이 문제는 환경 정책의 수준과 연결돼 있다. 환경 정책은 ‘착한 정책’이다. 하지만 착하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양해가 되는 시절은 지났다. 이산화탄소 감축 찬반을 물으면 찬성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를 위해 당신이 차를 살 때 최대 400만원을 더 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자가 도덕 시험 같은 문제라면, 후자는 생활의 문제다. 정책 능력이란 이런 복잡한 생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9일 공청회 중간에는 한 국회의원이 마치 웅변 같은 발언을 했다. 공청회장이 떠나갈 정도로 목청이 좋았다. “국회에서 여야가 결정한 걸 무시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열변을 토한 후 그는 곧 공청회장에서 사라졌다. 그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면 찾아가 묻고 싶었다. “그때 돈 낼 사람한테 물어는 봤습니까.”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