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조천면 「산굼부리」|분화구속에 「식물원」고스란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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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라산을 등지고 동북으로 성산포해안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 그 한가운데에 별안간 평지가 무너지며 회오리바람이 갈기를 세우는 아슬한 낭떠러어지가 나타난다.

<벼랑높이 백30m>
거의 수직을 이룬 벼랑의 높이는 l백30여m. 그 아래 아득하게 먼 바닥에는 가을의 흰갈대꽃이 바다를 이루고 검은 까마귀떼가 점점이 흐른다.
주봉 한라가 거느린 3백%개 기생화산중의 하나인 「산굼부리」분화구다.
북제주군 조천면 교내리에 있는 이분화구의 둘레는 l천5백여m, 직경 5백50m. 뿔이 잘려나간 원주를 거꾸로 한 모양으로 밑바닥 면적이 8천평에 달하는 거대한 것이다.
분화구의 높이는 해발 4백38m. 평지에서는 10m밖에 안돼 분화구의 정상에서도 초원의 저쪽 20여m떨어진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분화구 옆으로만 포장된 축산도로를 따라 차를 이용, 분화구를 구경할 수 있어 관광지로 개발할만한 적소가 되고 있다.
분화구를 얼핏보면 「올림픽」이 열리는 「스타디움」같다. 그러나 관람석은 세계각지에서 모여든 인종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순식물들만 들어찬 초록빛 「스타디움」이다.
「산굼부리」 분화구가 주변에 흩어져있는 「붉은오름」「검은오름」「부소오름」등 숱한 기생화산과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그 규모와 구조의 특이성뿐 아니라 고산지대와 난·온대에 걸친 4백20여종의 희귀식물들로 화려하게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식물의 보고」인 것이다. 식물원을 방불케한다.
지난6월 제주대는 종합학술조사반(반장 오현도교수)을 편성, 사상최초로 이 분화구에 대한 학술조사를 착수했었다.

<희귀식물 4백종>
지질 및 화산운동·동식물분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사활동 결과1차적으로 이 분화구에는 원시상태의 식물군락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태양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분화구의 절벽에 서식하는 식물이 예민하게 달라지고 있어 문자 그대로의『자연식물분포도』가 완성되어 있었다.
햇볕이 잘드는 북·동북·서북쪽의 분화구 절벽은 난대지역 식물군의 축소판. 한라산의 남쪽지역과 해발2백m이하에서만 자라는 후박나무·붉가시나무·구실잣밤나무·센달나무·감탕나무등 상록활엽수가 진을 치고 있다.
이 북쪽절벽의 아래층에는 금새우란 자금우등의 희귀식물과 식나무·겨울딸기등이 분포하고 있다.

<겨울엔 노루편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서귀포 「돈네코」지역 일부에서만 발견되는 겨울딸기는 한겨울에 빨간 열매를 맺는 야생딸기로 그 경취와 함께 농산기술면에 활용할만한 가치가 클 것으로 주목되고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분화구의 남·동남·서남쪽은 북면과 판연한 대조를 보이는 온대성 낙엽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수리나무·굴참나무·산딸나무·팔배나무·단풍나무·서나무·때죽나무등이 밀생하고 한라산 1천4백m고지부터 서식하는 진달래·머귀나무등 고산식물도 발견된다.
이번 제대조사반에 의해 처음 밝혀진 이 분화구의 주요식물은 비옥나무·굴피나무·등수국·머귀나무·보리수등 목본(목본) l백20여종과 콩짜개덩굴·쇠고비·꿩의다리·바늘엉겅퀴·소업맥분등 초본(초본) 3백여종이었다.
한나절 웬만큼 눈이 내려 평지에는 1m씩 쌓여도 분화구의 양지쪽은 채 하루가 가기 전에 모두 녹아버려 노루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관광지로 개발>
이같은 조사결과에 따라 제주도당국은 이 분화구를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을 서두르는 한편 관광「코스」에 포함시켜 관광지로 개발키로했다.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부횡단도로를 따라 서귀포쪽으로 15km, 이곳에서 접하는 축산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9km쯤 가면 교내리, 여기서 다시 1km를 더가면 「산굼부리」의 밋밋한 오름세를 보게된다.
주변은 2백여만평의 광활한 목지. 「샤로레」「앵거스」등. 외국산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온 「산굼부리」가 더 이상 목장의 한 귀퉁이에서 망각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관광지로 개발될 경우 원형이 손상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글=신상범기자, 사진="함영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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