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울리는 가짜 고 미술품|위조단 적발 계기로 본 문젯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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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위조 서화의 한 본거지가 들통나버려 골동가·화랑가는 최근 법석이 일어났다. 일시적이겠지만 고객도 뜸해졌느라고 울상이다. 2개 소가 경찰에 적발됐는데 앞으로 더 잡아내어 발본색원할 태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조품을 만들던 곳들은 이제 흔적도 없어졌으니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고 봄이 마땅할 것 같다.
위조품은 지난 몇 년 동안 호경기를 누려온 것이 사실인데 단속한다고 해서 앞으로 위조가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다.
위조 미술품은 동서고금을 통해 횡행하는 것이어서 미술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한 근절될 수가 없는 일.
고서화 가운데 가장 위조가 횡행하는 것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현재 그의 작품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의 70∼80% 이사이 모두 미심쩍게 여겨지고 있는 까닭이다. 추사(완당)는 19세기 중엽까지 생존했던 분이어서 그가 작고한지 1백20년 남짓한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가짜를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추사의 명성으로 보면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그의 특별전을 열만한데 전람회를 주저하는 것은 역시 까닭이 있다. 진위를 가린다는 것조차 어려운 일일뿐더러 소장자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해 말썽의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석파 대원군의 난초 그림도 가짜가 상당히 있어서 가끔 화제를 빚곤 한다.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 겸재 정선 등 손꼽히는 옛 화가의 것은 물론 조선초기 안견의 그림이나 안평대군의 글씨로부터 생존하고 잇는 이당 운보 화백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신사임당의 경우에는 자신 있게 진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물건이란 단 한 점도 없다는 미술사가들도 있다.
말하자면 『신사임당』이라 할 수도 있으되 본보기로 입증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아마 대학박물관과 개인들이 갖고 있는 이른바 사임당 그림은 상당수에 달할 것이다.
그림이나 글씨는 한 작가의 평생을 봉해 여러 경향으로 제작되는 것이므로 일정한 「룰」에 적용시켜 감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 하나의 「케이스」마다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곤 하는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서화가 너무 낡으면 가필해 수정하는 예가 있다. 혹은 찌들어 시커먼 화면을 때 빼기도 하고 찢어지거나 닳아 없어진 데를 비슷한 종이로 떼우고 취색하는 예도 있다.
가짜는 이러한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원형을 최대한 살려내려는데 그치지 않고 「사인」이 없으면 써넣기도 한다. 낙관이 없으면 고인을 얻어 찍어 두려는게 인지상정이다. 하다못해 명성 있는 감정가의 배관인이라도 받아두고 싶어한다. 중국서화에 있어서는 그런 배관인·소장인이 많은 화폭을 관록 있는 진품으로 여기는데 우리 나라에선 화폭 밖에 덧대 붙이는게 상례다.
그래서 고서화 중엔 그림자체가 틀림없는 진품 같것만 뒷날 낙관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적잖게 있다. 해방후 후낙관으로 악명 높던 화상도 있었다. 어떤 분은 배관인을 너무 많이 찍어뒀기 때문에 그의 도장이 찍힌 고 서화라면 아예 믿지 않는 부작용까지 빚어냈다. 요즘 우리 나라 학계의 권위 있는 감식가들은 일체 배관인을 찍지 않는 것으로 상식화 돼있다.
민속화의 위작은 훨씬 쉽다. 그런 그림은 낙관이 불필요하고 또 거의 필치가 치졸하다. 옛 종이인 양 취색해서 그림을 새로 그리기도 하고 병풍에서 막 떼온 듯 싶게 선둘렀던 자국을 너덜너덜 만들기도 한다. 한때 불화가 「붐」을 이루자 이것도 꽤 모사품을 만들어 냈다는 소문이 있다.
이런 고서화의, 진위는 결국 각 개인이 「케이스·바이·케이스」로 해결하고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고 서화는 돈과 직결돼있으므로 학계로선 장인과 수장가들 사이에 끼여 괜히 구실에 오르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간에 「아마추어」 감정가는 많지만 정말 책임지고 말할 수 있는 안목은 극소수다. 골동·서화는 부동산 투자와는 판이해서 고도의 지식과 훈련된 안목을 필요로 하므로 기분에 안 맞는 욕심은 자칫 와와 낭비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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