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의 새해 시정 연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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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안정과 조화 속의 성장 지속>
새해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박정희 대통령의 시정 연설은 대내적으로는 경제의 안정 성장을 통해 자립과 내실을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일본 등과의 전통적 우호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외교 정책을 천명함으로써 정치·외교·경제 시책의 기본 「프레임」이 흔들림 없이 보다 조화되고 안정된 구도로 짜여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새해 시공의 골격을 이루는 내정과 외교는 결국 안정과 조화라는 큰 줄거리로 집약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기반은 역시 자주적 국방 능력의 제고에서 찾아야 한다는 정부의 신념의 재확인된 셈이다.
어느 때 보다 특히 안정 조화·내실이 요구되는 소이는 내외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밖으로는 우리 외교의 한 축을 이루어 왔던 대미 관계가 그 동안의 몇 가지 현안 문제로 다소 석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어 왔으나 양국 정부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함께 해결에 노력함으로써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다.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대일 관계에서도 대륙붕 공동 개발 협정을 비롯한 몇 가지 중요 현안들이 해결됨으로써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셈이다.

<확대되고 조화된 성장>
대내적으로도 새해에는 여러 가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한다. 내정의 근간이 되어 온 경제 운용에서 우선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올해의 성장 경험에서 단적으로 나타났듯이 고율 성장 자체가 갖는 마찰음이 점점 높아 가고 있는 추세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만 하다.
정부·민간을 막론한 왕성한 투자 활동은 고용·소득·경제의 확대 재생산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자칫 우선 순위가 뒤바뀌거나 효율성의 경시가 수반될 경우 자원의 낭비에 그치지 않고, 「인플레」나 투기 성향의 조장으로 번질 우려는 언제나 존재한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는 주로 이런데서 비롯된다. 때문에 고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투자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고 절도 있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수요 측면에서도 재작년 이후의 정책 경험에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국제수지가 흑자 기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수요 관리에 가장 큰 난점이 있으므로 어느 나라 건 신중하고 보수적인 통화·재정 정책을 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올해 경험으로는 이점에 대한 대응이 시의를 얻지 못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
새해 시정에서 특히 경제의 안정적 기반 확충이 강조된 것은 따라서 적절한 방향 선택이며 경제 운용의 기본 지침으로 받아들여 실제 정책 실천에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 성장과 진출「드라이브」는 결국 종 당에는 보다 확대되고 조화된 「균형」을 추구하는데 본뜻이 있으므로 물가 안정, 「인플레」의 수속 없는 성장과 확대는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더욱 광범하게 받아들여질 필요가 있다.
이점 박 대통령이 강조한 총수요의 조절은 단순한 수요 관리의 차원을 넘어 장기적 물가 안정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지로 이해된다.
새해의 9% 성장 목표는 그 자체 고율 성장이기는 하나, 올해의 14% 성장 전망에 비교하면 상당한 절제를 보인 셈이다. 그만큼 정부의 안정 지향에 대한 결의가 대단함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인플레」억제의 결의>
새삼 「인플레」의 해악을 논의할 필요도 없이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인플레」는 그 자체의 병폐 못지 않게 국민들로 하여금 「인플레」의 기대감을 항상 지니게 함으로써 올해에 역력히 보았듯 각종 투기 행위를 조장, 경제 교란과 사회 불안으로까지 번져 갈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새해 경제 운동은 특히 공급 면에서 각종 애로 부문의 타개를 위한 유효한 투자 선택과 무역 정책을 적절히 활용, 물자 공급의 시기 적절한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수요 면에서는 재정·해외부문은 물론 민간 부문까지도 불필요하고 비경제적인 통화 공급을 지양, 경기 국면과 밀접히 연관되는 절도 있는 통화 정책이 긴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강조하고 싶은 점은 올해 물가 상승의 독특한 유형을 이루었던 농수산물의 가격 안정 대책이다. 소득 증대의 불가피한 과정으로만 여기기에는 이들 1차 상품의 값이 너무 턱없이 뛰었다. 이들 상품이 국민 생계와 직결되는 필수품인 점을 고려, 근본적인 생산·유통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 수매제와 수입 활용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최소한 기본 농수산 식품의 공급과 가격 안정만은 확보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의 부담을 더 늘리더라도 농협 수매와 계통 출하의 비율을 최소한 70% 이상으로 확대하는 연차적 계획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공급 애로의 해소와 함께 재정을 긴축하고 해외부문의 통화 공급 경로를 적절히 수속한다면 전환기의 「인플레」는 충분히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좋은 처방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자세와 결심이 모자랐던 결과가 올해 「인플레」의 큰 원인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안정과 내실의 또 다른 측면인 사회 개발과 정신 문화의 계발에도 새해에는 상당한 역점이 두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정책 목표들을 상호 모순 없이 구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책 담당자들의 보다 조화된 협동이 긴요함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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