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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 의료 제도의 개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에 일어난 번데기 중독 사고를 계기로 몇몇 의료 기관의 진료 거부 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 묻은 번데기를 먹고 빈사 상태에 빠진 어린이들을 안은 부모들이 한밤중에 허겁지겁 병원을 찾아 문을 두드렸으나 많은 병원들이 갖가지 핑계로 이들의 진료를 기피함으로써 회생할 수도 있었을 어린 생명들이 끝내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위급한 환자를 정성껏 도와서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의사의 윤리 이전에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도리다.
이런 뜻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료인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체가 깊은 반성과 더불어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오늘처럼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이에 따라 생명과 건강에 대한 각종 위해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 전체가 서로의 생명을 지키는데 필요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체제를 정비해 나가는데 중지를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기관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를 포함한 광의의 구급 체제 정비를 위한 구상이 필요하다.
병원의 진료 거부 행위 등을 단순히 감정적으로 『인술이 땅에 덜어졌다』는 식의 도덕적 지탄만 되풀이한다고 해서 없어지리 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생명이 위태로운 구급 환자는 무조건 의료 기관에 수용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 제도의 확립이다.
여기에는 우선 지역 단위로 응급 구호를 맡는 병원을 대폭 늘리고, 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환자를 치료했을 때는 지체없이 국고나 지방 재정에서 치료비를 부담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 구급 환자를 신속 안전하게 의료 기관에 수용하기 위한 구급차 「서비스」 체제가 기동성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요즘처럼 병원 구급차를 이용하기가 어려워서는 돌발적인 사고나 재해를 당했다 해도 제때에 필요한 응급 처치를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웃 일목의 경우 구급차의 운영은 병원이 아니라 지방 자치 단체의 책임으로 관할 소방서가 맡고 있다.
구급 치료는 촌각을 다툰다는 점에서 화재와 조금도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도 화재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달려가듯 위급 환자가 발생하면 그 사회적 신분이나 경제 사정 여하에 관계없이 즉각 구급차가 출동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세워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이와 함께 필수적인 것은 구급 조치에 대한 국민의 계몽이다. 긴급 구호를 요하는 사고가 났을 때 그 현장 주변에 의사나 병원이 있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고 발생 직후의 짧은 시간은 대개의 경우 생사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인 것이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찬스」도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점을 충분히 고려해 넣은 어떤 획기적 대책이 수립돼야 할 필요가 있다.
약물에 중독된 사경의 어린이를 안고 종합병원을 찾지 않고 응급 구호 시설이 전혀 없거나 미비된 개인 병원을 10여군데나 전전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낸 어린이들의 부모들도 어떤 의미로는 구급 상황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의사 이외의 일반인들도 평소부터 응급조치에 대한 상식을 갖도록 적극적인 계몽 활동이 실시돼야 하겠다.
번데기 중독 사고를 교훈 삼아 구급 의료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빈틈없이 논의되고, 최선의 개선책이 세워짐으로써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사고가 근절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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