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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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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조적으로 팽창 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 것이 우리나라 예산이다.
그 동안 고도성장으로 줄달음쳐오면서 벌여놓은 개발 사업을 마무리해야 하고 한편으론 전체예산의 3분의 1은 국방비로 떼어 놓아야하며, 고속의 「인플레」에 맞추어 일반경비도 올려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성장과 공업발전의 구호 그늘에 묻혔던 사회개발부문 투자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국면을 맞이한 것이다. 인력·기술·사회간접자본 등 사회개발부문은 이미 성장의「보틀네크」로 표면화된 것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편성된 내년도 예산안은 안정의 명제에 눌려 전체적으로는 긴축을 하려는 노력이 투영되어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년대비 29·5%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재정규모 증가율 29·5%는 내년도 GNP 경상성장률 22·1%(전망·실질 9%)보다 상회하는 것으로 팽창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내년도 경제시책의 최대역점을 물가안정·경제안정에 둔다면서 재정규모를 29·5%나 늘려 또 다른 재정 「인플레」 소지를 자초하고 있는 것은 어딘가 위화감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안정기반을 조성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면 좀더 과감하게 긴축·흑자재정으로 안정추진력을 확보했어야 했다.
지난 3년간 연속 10%이상, 특히 금년에는 15% 가까운 초 고도성장을 기록하게 될 것 같고 그 뒤에 올 부작용은 안정기반 붕괴로 나타날 조짐인데도 성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대만이 다져온 안정을 기반으로 해서 괄목할 성장을 하고 있고 수출 신장률이 우리 나라를 앞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하다.
규모의 팽창을 제쳐놓는다면 예산의 내용에 있어선 종전의 「패턴」을 어느 정도 탈피한 것으로 보여 평가를 받을만하다.
첫째 불가침의 성역인 국방비 몫을 줄이고 대신 사회개발부문의 비중을 크게 높인 것이다.
국방비는 금년에 대 GNP의 비중이 6·5%에서 6·2%로, 전체 재정규모에 비해선 34· 8%이던 것이 33· 2%로 축소됐다.
대신 주택부문에 금년보다 1백 82%나 늘린 것을 비롯 실업교육·직업훈련 등 인력개발과 교육부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린 것이다.
사회개발 투자부문에 대한 재정투입액이 금년에 비해 41·1%나 증가한 것은 국방비의 23
·9%(방위비 기준은 24·5%), 경제개발부문의 증가율 29·1%를 훨씬 상회한다.
사회개발부문에 대한 비중을 높인 것은 성장의 그늘에 묻혔던 저변의 문제점들이 부각돼 정부가 애로요인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둘째는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이다.
물가 상승을 선도해 온 농수산물의 가격안정을 위해 금년에 불과 20억원만 계산했던 채소류 증산 및 유통개선에 2백 75억원이나 배정했다.
예년에 없던 채소류 증산에 34 원. 농산물 비축창고 건설에 45억원, 농산물 종합유통「센터」에 25억원을 신규배정하고 20억원이던 농산물 안정기금을 1백 2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세째는 중화학부문의 투자감소다.
내년도 예산에는 중화학공업 지원을 위해 불과 4백 53억원 만을 할당했는데 이는 금년의 1천 20억원에 비해 약 6백억원이 줄어든 것이다.
이제는 중화학공업을 굳이 정부가 앞장서서 지원하고 투자하지 않더라도 민간업체 또는 정부출자업체들이 자체 능력으로 충분히 자생 성장해 갈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세입 면에서 내국세를 금년보다 24·2% 증가 책정하고 관세와 방위세는 46·9% 및 39·9%나 늘려 잡아 놓고있다.
관세도 수출품 가격의 상승으로 소비자에 부담이 가는 것이고 방위세도 결국은 소비자나 국민에게 전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국세 부담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을 내세울 일이 못된다.
더구나 내국세 증가율 자체가 GNP의 경상 성장률을 앞지르고있기 때문에 국민의 실질부담은 금년보다 더 늘어나게 되어 있다.
요컨대 전매이익금까지 합쳐서 약 4조 3천억원을 직접·간접적인 국민부담으로 충당하게되어 있어 부담가중은 피할 길이 없게 되어 있다.
재정의 팽창률이 30%선을 유지해야 되는 나라살림은 아무리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현상으로 설명한다하더라도 과도한 재정은 또 다른 재정「인플레」를 일으키고 그것은 다시 안정기조를 해친다는 기본원리를 인식해야만 할 것 같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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