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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월호에 밀려 실종된 한국 외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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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16일부터 21일까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에 나선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이 제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관련해 중요한 협력 대상으로 꼽히는 나라들이다. 청와대로서는 세월호 참사로 중단된 정상외교를 정상화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사안의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에 비추어 지금이 중앙아 순방을 할 타이밍인가 하는 의문도 없지 않지만 정상외교 자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순방 일정은 이미 오래전에 잡혔을 가능성이 크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과연 지금 한국 외교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중요하고 시급한 대외 현안에서 한국 외교가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게 아니냐는 문제의식 때문에 대통령의 중앙아 순방을 놓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가뜩이나 허약한 한국 외교가 세월호 참사 이후 더욱 맥을 못 추고 있다. 북핵 외교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날을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의 도발을 막고, 협상을 본궤도로 돌려놓으려는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공은 북한 쪽에 넘어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하늘에서 감 떨어지듯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구상을 흡수통일 의도로 폄하하며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그 어떤 설득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연초에 합의한 남북 고위급 접촉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종군 위안부와 과거사 문제에 걸려 대일 외교는 사실상 포기 상태다. 그 틈을 비집고 일본은 납북자 문제 해결이란 인도적 명분을 내세워 북한과 박자를 맞추며 광폭(廣幅)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평양과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일본 정부 방침은 한·미·일 대북 공조의 심각한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의 미국 미사일 방어(MD) 체제 편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워싱턴 쪽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부인하기에만 급급할 뿐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박근혜 정부의 2기 외교안보팀이 출범했지만 진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정원장은 공석이고, 외교장관과 외교안보수석도 교체 여부를 놓고 하마평만 무성하다. 이런 어수선한 상태에서 전략적 마인드와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에 기초한 외교다운 외교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공허한 수사와 무의미한 말장난이나 늘어놓는 소모적 페이퍼워크로 밤을 지새우는 한심한 장면들만 연출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정상을 되찾아야 하는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한국 외교야말로 기능부전에서 벗어나 제 역할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은 비상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