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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33주·정부수립 3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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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5해방 33주년,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30주년의 광복절을 맞는다.
30년 하면 옛 기준으로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세번이나 곱했고, 한 세대가 바야흐로 교체될 찰나에 있다.
그동안 우리의 국가사회는 과거 같았으면 한 세기를 통해서도 기대할 수 없을 만큼의 큰 발전과 변화를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전란과 동족상잔, 몇 차례의 혁명, 기적적인 경제성장, 가치관의 전면적 붕괴 등 온갖 시련의 역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30년전과 지금을 비교할 때, 의식주 생활의 양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국민의 의식과 사고방식, 사회적 풍습과 도덕관념, 학문과 예술,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실로 격세지감을 금할 수 없다.

<세계사 속의 한국>
이 모든 것은 8·15 해방 후의 세계가 함께 걸어온 세계사적 진운에 따른 것이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우리가 독립된 정부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이루어진 것들이다.
발족직후의 나이 어린 대의정부를 쓰러뜨리려고 했던 공산도당들의 전쟁도발도 우리는 세계 우방의 도움을 얻어 물리칠 수 있었고, 그 전란의 폐허 속에서 재기하여 급기야는 세계를 놀라게 할만큼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한 것도 정부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동시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사회적 이화감의 만연과 도덕적 퇴폐, 그리고 국민 각계각층을 휩쓸고 있는 상호불신 등의 풍조도 결코 정부와 무관한 것일 수는 없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그 사이 우리 사회가 경험한 변화의 양상이 얼마나 크고, 심부 침투적인 것이었던가를 표시하는 지표들은 많다.
우선 지난 30년간 GNP만해도 무려 3백17배 이상이 신장했다는 최근의 정부발표는 그 사이에 이루어진 우리 국민생활의 물량적 영역확대가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정부수립 당시 2천여 만 명이던 남한 인구가 이제는 3천7백만 명을 넘어섰고, 이중 8·15 해방의 감격을 전혀 느껴보지 못한 30세 이하 인구가 전 인구의 54%라는 또 하나의 통계는 그 사이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신구세대간의 갈등과 도덕적 혼란이 어디서부터 유래했으며, 또 오늘 우리 겨레가 기념하고 있는 광복절의 참뜻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국민적 계몽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

<8·15해방의 참뜻>
사실, 지금 우리는 우리 민족사회의 존립을 가능케 했고, 우리 나라의 건국이념을 배태케 했던 8·15해방과 광복의 참뜻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의 감격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들 젊은 세대들에게 뼈에 스며드는 신념으로서의 올바른 시대의식과 도덕적 지표를 뚜렷이 제시해야할 기성세대의 지도층 인사들마저가 우리 국가사회의 존립근거라 할 이 8·15의 참뜻을 망각해버리고 말았다는데 오늘의 한국사회의 병폐는 싹튼 것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8·15의 해방은 결코 일제통치로부터의 물리적인 해방만을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비록 2차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피동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했지만, 그 원동력이 단순히 연합군의 군사적 승리라는 물리적 역관계에만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역사교과서를 살펴볼 때, 그것은 자유를 향해서 끊임없이 자기전개를 지속해 가는 역사정신의 소치로서, 이를테면 하나의 세계사적 필연이 한반도라는 무대 위에서 이를 거부하는 일체의 「앙시앙·레짐」적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고한 것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점은 2차 대전 이후 창립된 「유엔」의 헌장과 세계인권 선언에도 명시된 정신일 뿐만 아니라 전후에 탄생한 수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의 존립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로써도 증명된다 할 것이다.
따라서 8·15해방 이후 우리 사회가 겪어야만 했던 갖가지 불행한 시행착오와 혼란의 역정들은 궁극적으로는 8·15해방과 광복이 갖는 이같은 세계사적 의미에 대한 인식이 투철치 못하여 그 정신이 우리의 실생활과 제반제도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의 자체역량만을 가지고서는 어찌할 수 없는 국내외적 여건이 존재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전후세계의 냉전구조화와 이에 따른 공산당들의 반동, 그 중에도 특히 북괴공산집단의 반민족적 전쟁도발과 우리 내부에 뿌리깊게 온존했던 봉건사회적 유제들이 우리사회에 진정한 자유의 정신을 꽃피우게 하기에는 아직 곤란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신적·문화적 역량>
그러나 건국 3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 한국과 한국민의 처지는 이제 이러한 것들의 변명으로 그 역사적 도약을 늦출 수는 없는 싯점에 이르렀다. 1백억「달러」의 한국산 상품들이 수출되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세계 각처를 넘나들고 있는 『세계 속의 한국』만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할 모습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적으로 이토록 신장된 우리의 경제적·물질적 역운 못지 않게 이제부터의 한국과 한국민은 내적으로 그 정신적·문화적인 역운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좌표를 세계 속에 뚜렷이 정립하고, 정의롭고 균형잡힌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세계사의 진운에 우리 스스로가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과제를 안게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근원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경축하기로 한 8·15 해방 33주년과 정부수립 30주년의 참뜻을 되새기는 일이라 믿는다.
우리 국민 모두가 8·15해방이 가져다준 자유의 참뜻과 그 세계사적 의미를 실천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우리의 실생활과 제반제도 속에 뿌리박도록 하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일대분발이 있어야 하겠다.
자신을 불사른 잿더미 속에서만 재생이 가능한 「피닉스」(불사조)의 우화는 진정한 자유의 정신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얘기다. 세계사적 도약을 성취하고자 하는 오늘의 한국민에게 있어 이 우화가 시사하는 단절과 비약의 변증법적 논리는 참으로 귀중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8·15해방의 참뜻이 진정한 자유정신의 세계사적 전개에 있고, 그러한 자유의 실현이 오직「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상징되던 일체의 「앙시앙·레짐」적 구질서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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