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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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승만 박사가 세종로1번지의 주인이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경무대 안에는 「다다미」방이 여러개 있었다.
비서들은 당장에라도 「다다미」를 치우고 마루방으로 고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이 박사는 12년 동안 이곳에 살면서 끝내 「다다미」방을 치우지 못하게 했다.
이 박사만큼 반일사상이 철저했던 사람도 드물다. 따라서 「다다미」라면 누구보다도 더 역겨운 감정을 가졌을텐데도 말이다.
한편 이 박사만큼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한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 「다다미」를 바꾸는데 버리는 돈이 아까와서 그랬을지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실상 그는 「다다미」라는 외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후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뀌어지면서 「다다미」도 없어졌다.
지금 거리에서는 「다다미」가 되살아난지도 꾀나 오래된다. 이 박사의 교훈이 그만큼 보급된 탓일까.
오늘은 광복 33주년, 그리고 정부수립 30주년. 이날의 감격을 느껴보지 못하고 자란 갓난애도 이제 장년이 됐다.
그들은 「다다미」를 보고서도 해방 전 세대와는 다른 「이미지」를 받는다. 그만큼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이다.
모든 것이 놀랍도록 바뀌었다. 산천도 좀처럼해서는 같은 구석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됐다.
인심도 달라지고, 옛정도 이제는 찾아볼 길이 없다. 33년전 오늘의 감격을 되새겨 본다는 것부터가 쑥스러워진 오늘이다.
그러나 한번 곰곰 생각해 보자. 33년전의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었던가를.
얼마나 값진 해방이었기에 그토록 많은 선열들이 피를 홀리고 목숨을 잃었고,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름을 참고 견디어야 했던가도 아울러 생각해보자.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해볼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생각해 볼 것은 많다. 33년전의 오늘 영문 모르고 남이 그려준 어설픈 태극기를 대문 앞에 걸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때의 태극기보다 오늘 거리에 즐비한 태극기가 얼마나 더 값진 것이 되었을까. 얼마나 더 값진 것으로 우리가 만들어 놓았다고 자랑할만한지. 누구나가 잠시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도시 누구를 위한 해방이었는가를 우리 모두 곰곰 다짐해보자.
보다 행복한 삶, 자랑스러운 내 나라를 꿈꾸며 수많은 사람들이 숨졌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세대를 위하여 과연 얼마나 힘썼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가 생각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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