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30년 특별 시리즈(6)|한국 속의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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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면 『저기 미국사람 간다』고 할 만큼 우리의 의식 속에서 미국은 외국의 대명사 같이 통했다.
해방과 함께 밀려든「미국식」과「미국 것」의 바람은 의식형성에 큰 몫을 하고 6.25를 계기로「혈맹」관계가 맺어지며 물량원조가 쏟아져 들어올 때 미국사람은『인심 좋은 「색인 아저씨』로 우리 영상깊이 새겨졌다.
식량·옷가지에서 성냥개비에 이르기까지 미국물자의 위력과 전란 후 혼란기를 틈타 확산된 미군을 통한 현란한 대중문화는 한국인을 미국의 틀 속에 가두어 놓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존재는 절대적이었고 휴전 후 54년 미군이 감축될 때는 불안하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문화는 부분적으로 잘못 수용되어 부작용을 낳고 실용주의는 편의주의로 변용 되기도 했다.
특히 전쟁으로 기존 가치관이 무너진 혼란기에 미국문화의 유입은 전통적인 성도덕 관념마저 깨뜨려 대도시 가정부인들 사이에 춤바람이 일며,「자유부인」시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자녀가 몇이냐고 물어올 때 셋이라고 대답하기가 주저될 때가 있어요』주부 이영자씨(33·관악구 상도동)의 이야기다.
이렇게 미국은 우리사회의 최소의 구성단위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평균 자녀수가 6·3명이었던데 비하면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 돼가고 있다.
『지금 당장은 부모님과 함께 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노후에 경제력이 없을 때 모실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제 경우는 노후를 아이들에게 의탁할 생각이 없어요. 아이들이 자립 할 수 있도록 만 양육하고 저축 해야죠』수산회사에 다니는 장순호씨(35·강남구 대치동)는 노후생계비를 위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50년대·60년대에 젊은 사람들의 행동이 버릇없다고 못마땅해 할 때엔 거의「미국물」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지금은「미국물」에 별다른 거부반응이 없다. 그만큼 우리 자신이 내면적으로 미국화·서양화 됐다.
재수생 김형호군(19·관악구 상도동)은 고갯길에서 수레를 끌고 가는 청소부 노인에게 『할아버지, 수고하십니다』고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가 혼줄이 났다. 이런 분위기 형성은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것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러나 이 산업사회를 끌어간 지식「엘리트」들이 압도적으로 미국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미국문화의 역기능이 무관 할 수는 없다. 관료·학자·군인·언론인·기술자들이 50년대부터 숱하게 미국유학을 하거나 교육 교환계획으로 갔다가 돌아와 사회지배층에 자리잡고 있다.
사회과학 학자 부문에서만 보더라도 현재 외국 박사학위 소지자 3백72명중 75%인 2백82명이 미국박사다. 대미 의존이 거의 절대적이던 60년대 중반까지엔 서울대학교 교수는 모두가 한번은 미국을 다녀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정범수·교육학).
미국의 합리주의와 기능주의가 그들에 의해 한국에 수입되고 응용됐다. 미국군대의 산물인「브리핑」행정이 역시 미군제를 본 딴 한국군에 도입되어 현재 한국행정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 경제정책의 입안자도 대다수가 미국의 기능주의를 배워온「테크노그래트」군이다. 관료뿐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도 합리주의적인 경영방식으로서 미국식 관료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능률중심 미국문학의 도입이 한국의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한 반면, 물질주의적인 사고방식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50년대 말 대학생의 직업관에서 으례 교수자리가 으뜸을 차지하던 것이 60년대 말에는「엔지니어」로, 초년대 중반을 넘어서는 사업가로 다시 바뀌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문화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요소로는『퇴폐풍조, 지나친 개인주의·물질주의, 가족제도 순서로 나타나고 있다』고 박현수 교수(고대·사회학)는 말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전통적인 윤리·가치관과 실용주의적인 가치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미국화는 일시적인 유행의 단계를 넘어 우리생활과 문화속에 정착했다. 아침식사를「커피」·「토스트」로 때우는 사람들, 용산의「유엔」사 식당을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사람들, 어린 자녀들을 어거지로 AFKN「텔리비전」앞에 끌어다 앉히는 사람들에게 태평양은 그렇게 넓은 바다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의 미국관에 비관이 일기 시작했다. 박동선 사건의 공로다. 한국의 미국에 대한 77년의 호감도가 72년에 비해 69%나 감소하고 있다(77년 중앙일보 여론조사). 더우기 호감도가 떨어지는 비율이 지식수준이 높을수록 큰 폭을 나타내 이는『앞으로의 한·미관계가 감정적 차원에서 합리적인 관계로 발전해야 됨을 가리키는 좋은 지표』라고 차재호 교수 (서울대·사회심리학)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30년의 시간을 지워버릴 수 없는 이상 한국사람들이「탈 미국」을 갈망해도 한계가 뻔하다. 땅위의 미군이 철수해도 의식속의 미국은 계속「주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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