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박사, 주위 사람에「잠적」암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물리학자 김희규 박사 실종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시경 수사본부는 4일 김 교수가 실종되기 전 자신의 신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알고 이를 사전에 주위사람들에게 암시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김 교수가 실종 하루 전인 지난달 23일 하오8시20분쯤 가까운 친구인 조병하 박사(한국과학원 물리학과교수)를 만나 논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뒤『내일 회의에 못 나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 박사에 따르면「내일 회의」란 지난달 23일 하오3시 고대에서 열리게 되어 있던 물리학회 연구 추진회의로 조 박사는 이때 김 교수가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거나 몸이 좋지 않아 못 나오겠다는 말로 듣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이 같은 사실은 김 교수가 실종 전 자신이 화공 약품상회에서 극약을 사 가지고 간 사실을 주위에 노출시킨 점과 관련, 큰 의문점이 되고 있다.
경찰은 김 교수가 자신의 실종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조 박사의 진술에 따라 김 교수가 사전에 자살을 결심했거나 자살을 가장한 또 다른 이유에서의 실종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고있다. 경찰은 또 김 교수의 실종사건에 가장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부인 한원주씨를 자택에서 이틀째 심문, 김 교수의 국내외의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이 한씨를 조사하는 이유는 ▲실종된 김 교수가 부인에게 여러 번 말했다는『미안해』라는 말의 의미를 한씨만이 알고 있을 것이고 ▲한씨가 지난달 27일 인천에서 전화를 받고 조 박사 등과 함께 인천까지 가 경찰서장에게 협조를 의뢰한 사실을 그 동안 숨긴 점 등이다.
경찰은 또 친지·동료 교수들로부터 김 교수가 61년 정신질환을 앓은 것은 세계적으로 이름난「시카고」대 석사과정을 마친 후 주임교수의 추천을 받지 못해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 못한 충격에 의한 것이었으며 63년 귀국한 뒤 음독자살까지 기도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 지난 4월까지는 문교부나 과학기술처에 제출하는 논문심사를 김 교수 자신이나 김 교수 층의 노장들이 맡아왔으나 그후 김 교수 후배들로 심사위원들이 바뀌어 김 교수 자신의 논문이 후배들의 심사를 받는데 대해 고민해 왔다는 것도 밝혀냈다.
경찰은 김 교수가 실종되기 전날인 23일 상오9시쯤 부인 한씨가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강신애씨에게 전화를 걸어『남편이 옛날의 증세를 또다시 나타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상의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한편 경찰은 김 교수가 자살했을 가능성에 대비, 5일째 서울·경기 일원의 산 수색을 벌였으나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했고 4일 현재까지 신고된 4건의 시민제보에 대한 수사도 성과를 얻지 못했다.
3일 하오 9시쯤 30대 청년으로부터『김 교수가 인천 앞바다 목도에 묵고 있으니 찾아보라』는 전화가 수사본부에 걸려와 목도 일대를 수색했으나 김 교수의 행적수사에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