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장마는 걷혔지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결단나는 것은 농사뿐이다. 그러나 장마가 크게 지면 논밭은 물론 인명까지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근만큼 무서웠던 장마도 이제 걷히는가 보다. 유난히 오래 끌었던 푼수로는 큰 피해가 없었던걸 천만 다행스레 여겨야 할 판이다.
심하게 말하면 장마가 서양과 동양과를 갈라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장마가 없는 서양에서는 노동의 양과 수확과는 정비례했다.
일하면 일할수록 수확은 어김없이 늘었다.
합리주의는 이래서 생겼다. 자연을 보는 눈도 매우 드라이하고 합리적이다.
비발디의 합주곡『사계』나 베토벤의『전원교향곡』은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노래한 음악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사실은 묘하게 변해 가는 사계가 아니다. 자연 바로 그것일 뿐이다.
자연을 가장 아름답게 그러냈던 영국의 화가 컨스터블은『자연을 보는 기술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읽는 기술과 거의 같게 습득할 수가 있다』고 까지 말했다.
세잔 도 구조적인 논리로 풍경의 역학을 파악하려 했었다. 그런가 하면「스라」는 광선의 분석을 통해서 자연을 보려고 했다.
이렇게 장마가 없는 서양의 합리주의는 자연의 추상화를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네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다. 철 을 놓치면 농사는 결단난다. 꼭 모심을 때 모심어야 하고 밭갈 때 밭 갈아야 한다.
그러나 언제 물난리를 겪고 가뭄이 있고 또 태풍이 휘몰아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언제나 계절과 시간에 쫓겨가며 살아야만 했다.
그런 우리에게는 자연의 온갖 현상은 바로 자연의 본질이나 다름없었다.
쫓겨다니기에 바쁜 사람에게 있어서는 강력한 대결의식이 있을 수도 없었다.
그저 참고 적응하고 체념하는 생활 감정을 키워 나가기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비합리적인 것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어제 등교길이 막힌 중학생 16명이 정원 8명의 거룻배를 타다 급류에 휘말려 죽었다.
있을 수 없는 참사가 아직도 있을 수 있는 사고로 여겨지는 것도 결국은 장마 탓으로만 돌려야 옳을 것인지.
어떻든 장마는 물러났다. 그렇다고 온갖 불합리적인 것들이 다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삼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산다는 말도 옛 사람들은 남겨 놓았다.
비록 장마는 걷혔다 해도 장마의 뒤치다꺼리는 좀처럼 끝날 것 같지는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